아산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1412
한자 牙山市
영어공식명칭 Asan City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맹주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4년 - 온양군·아산군·신창군을 합쳐 아산군 개설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3년 7월 1일 - 탕정면 모종리, 권곡리를 온양읍에 편입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3년 2월 15일 - 배방면 남리, 탕정면 신리, 신창면 점량리, 신창면 득산리, 신창면 실옥리를 온양읍에 편입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6년 1월 1일연표보기 - 아산군 온양읍이 온양시로 승격 분리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7년 1월 1일 - 배방면 공수리 일부 온양시 편입, 탕정면 구령리 배방면 편입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9년 1월 1일 - 아산군 청사 온양시 온천1동에서 염치읍 송곡리 244-19로 이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0년 4월 1일 - 염치면이 염치읍으로 승격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연표보기 - 아산군과 온양시 통합 아산시로 개편
소재지 아산시청 - 충청남도 아산시 시민로 456[온천동 1626]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서북부에 있는 시.

[개설]

아산군은 1914년 3개 군현[온양군, 아산현, 신창현]이 통합되어 생겨났으며, 1986년 온양시가 분리 독립하였으나 1995년 다시 아산군과 온양시가 통합되어 도농복합시인 아산시가 되었다.

[자연환경]

충청남도 아산시는 동단[배방읍 휴대리, 동경 127° 06′ 32″], 서단[선장면 신덕리, 동경 126° 50′ 32″], 남단[송악면 거산리, 북위 36° 39′ 53″], 북단[둔포면 운용리, 북위 36° 55′ 46″]을 경계로 한반도의 중앙부 및 충청남도의 최서북단에 자리하며 수도권과 충청남도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아산시와 인접한 도시는 동쪽으로 충청남도 천안시, 남쪽으로는 공주시, 서쪽으로 예산군, 북쪽으로 경기도 평택시가 있다. 북쪽은 차령산맥의 여맥에 속하는 낮은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남쪽의 산지에서 발원하는 곡교천이 서류하여 그 유역에 비옥한 평야지대를 형성하며 삽교천에서 합류하여 아산만으로 유입된다.

지역에 고루 분포된 40여 개의 저수지는 관개용수로 이용되고 있으며, 중앙을 흐르는 곡교천의 물은 농업용수뿐만 아니라 공업용수로도 사용된다. 남쪽에 광덕산[699m]과 북쪽에 영인산[363m], 서쪽에 도고산[348m], 동쪽에 배방산[361m]이 아산시를 품어 해안지역의 도시들보다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의 피해를 줄여주며, 사계절 맑은 물과 신선한 공기를 공급한다.

아산시의 연중 기온분포는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기온분포와 거의 일치하며 연평균 기온은 12.3℃로 가장 더운 달과 가장 추운 달의 기온차는 약 28~29℃로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의 특성을 보인다. 아산시의 연평균 강수량은 약 1298㎜이며, 우리나라 강수 특색에 맞게 7월의 장마, 8월의 태풍 및 집중호우로 여름에 강수가 편중된다.

아산시는 하천, 지천, 호수 등 수계가 잘 발달해 있어 텃새 및 철새도래지로서의 기능을 하며, 산림이 대부분 해발 500m 미만의 낮은 산으로 법정보호종인 황새, 큰고니, 참매, 수리부엉이 등 생태적 지위에 맞는 동물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다.

[인문환경]

충청남도에서 인구 규모가 두 번째로 큰 아산시는 2019년 1월 말 기준 총 33만 666명[주민등록인구 31만 3186명, 외국인 1만 7780명]으로써 남성은 17만 2602명이고 여성은 15만 8064명이다. 17개 읍·면·동 중에서 배방읍이 7만 1831명으로 가장 많고, 선장면이 3,773명으로 가장 적은 인구분포를 보인다. 지난 55년간의 연도별 인구추이를 살펴보면 1962년에 16만 4698명에서 2018년에 32만 9230명으로 거의 두 배[16만 4532명] 가까이 증가하였다. 인구 구조를 살펴보면 구성비에 있어서 30~34세가 가장 높고, 85세 이상이 가장 낮은 성비를 보인다.

아산시의 도시 형성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충청도 54개 고을 중에 아산, 온양, 신창 고을이 명칭이나 행정계층상의 지위를 부분적으로 달리하면서 변천을 거듭하다가 1914년 조선총독부의 지방행정제도 개편에 따라 당시 아산군, 온양군, 신창군의 3개 군이 통합되어 아산군으로 변경되었다.

아산시의 명소 가운데 현충사온양온천, 신정호, 공세리성당 등은 개화기와 광복 후 개발을 거듭하여 오늘날 아산시의 지역적 정체성 형성에 기여해왔다. 1919년에 착공하여 1931년에 개통된 장항선 철도의 개통은 온양역을 중심으로 근대적 시가지를 갖추게 되어 군청, 경찰서 등의 행정기능체, 금융기관, 상점, 시장, 온천욕장, 숙박시설 등 상업시설들이 들어섬으로써 온천도시로의 인프라를 갖추게 되었다.

2008년 수도권광역전철망이 아산시에 이르고, 일반도로망[국도 21호선, 국도 34호선, 국도 38호선, 국도 39호선, 국도 43호선, 국도 45호선, 지방도, 시도]이 인근 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 당진대전고속도로, 논산천안고속도로]와 연결되었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제조업체의 증가는 인구증가로 이어져 공간적인 도시 팽창뿐만 아니라 재정자립도에서도 안정적인 도시로 성장하고있다.

[삶의 터전과 역사]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출토된 구석기 유적[실옥동유적]과 유물[석영제 몸돌, 톱니날 등], 신석기 유적[풍기동유적]과 유물[빗살무늬토기편, 갈돌 등]을 통해 볼 때 아산 지역은 나지막한 구릉과 소규모의 곡간(谷澗) 분지가 발달하여 농경에 유리한 자연환경이었음을 알 수 있다. 농경은 정착생활을 가능하게 하여 곡교천삽교천을 중심으로 청동기문화가 발전하였고, 철기시대에는 큰 규모의 취락을 중심으로 소규모 국가가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전환되는 삼한[마한, 진한, 변한]시대의 유적[와우리유적, 신법리유적 등]과 유물[철기류]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아산 지역에는 마한의 유력한 소국[목지국]의 중심지일 가능성도 제기될 정도로 마한 연맹체의 정치·문화적 중심지였다. 백제는 마한 연맹체의 맹주국인 목지국을 병합하였고, 아산 지역의 지리적 중요성은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한 후에 고구려와의 군사적 긴장 관계로 증대되었다. 아산 지역의 군사지리적 중요성은 많은 산성유적[읍내동산성, 물한산성, 영인산성, 신창학성 등]의 분포가 입증해 준다.

백제 초기부터 ‘탕정(湯井)’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으로 볼 때 일찍부터 온천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멸망한 이후 통일신라시대 아산 지역의 역사상을 파악할 기록은 많지 않으며, 다만 『삼국사기』에 "여름 4월에 어가가 온수에 행행하였다."는 기록에서 아산 지역이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었음을 알수 있다. 백제시대에 아산은 탕정군, 아술현, 굴직현으로 구성되었다가 고려시대에 명칭의 변경은 있었지만, 조선시대에 아산은 온양, 아산, 신창의 3개 군현 체제로 1,500년 전통을 이어왔다.

고려시대에 아산 지역은 후백제와의 결전에 활용할 고려군의 군사적 거점으로 배방산성이 구축되었고, 아산만 해안지대 역시 나말여초의 변동기에 중요한 전략적 의미가 있어 둔포면 신법리에 방어시설인 토루를 구축하였다. 고려시대에 아산 지역이 부각된 것은 몽고군[1231년~1259년, 11번의 침입]과의 여러 차례의 결전 때문이었다. 1236년 향리였던 현려(玄呂)의 지휘 아래 아산 지역민들은 온주아문이 있던 읍내동산성에서 몽고군을 격파하여 현려는 왕으로부터 호장(戶長)의 직급을 얻었다. 특히 1256년 6월 중앙에서 아산에 이천(李阡)의 수군을 투입하여 승리했다는 사실은 아산 지역이 차지하고 있던 강화도와 가까운 전략적 거점과 관련이 깊다. 1994년에 진수한 한국 최초의 국산 잠수함 ‘이천함’은 바로 1256년 아산에서 적을 격파한 이천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고려시대에 아산에도 불교문화가 유입되었다. 유적으로는 온양읍치에 당간지주만 남아 있는 사지, 송악면 평촌리의 약사여래입상, 온양6동오봉사 삼층석탑, 배방읍회룡리 삼층석탑 등이다. 조선시대 아산 지역은 행정적으로 충청도관찰사의 관할하에 온양군, 신창현, 아산현으로 구성되었으며, 군사적으로도 관찰사가 겸임하였다. 아산 지역의 지방관을 역임했던 인물 중에는 1578년 아산현감으로 재직했던 이지함(李之菡)이 두드러지는데,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걸인을 구제하고 노약자와 굶주린 사람들을 구호하였다. 또한 이지함은 군역의 폐단을 알리고 군정(軍政)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조선의 왕들은 질병 치료차 자주 온천에 행행(行幸)하였다. 온양에 장기간 체류하거나 자주 이용한 왕은 세종과 현종이었으며, 국왕의 온천욕을 위해 온양온천에 행궁[온양행궁]을 지었고 어실(御室)을 만들었다. 온행에 이용되는 교통수단은 어가와 말이었다. 온양온천에 행차한 임금은 세종, 세조, 현종, 숙종, 영조, 정조 등이고 장헌세자도 확인된다. 온양온천은 조선의 왕실 전용 온천이었다.

아산의 인물 중에는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인 고불 맹사성이 두드러진다. 최영 장군의 손녀사위이기도 했던 세도가 맹씨 집안은 대대로 벼슬을 지냈고, 맹사성은 27세 되던 1386년 문과친시에서 장원급제하였다. 맹사성의 벼슬은 좌의정에까지 올랐으며 청백리로도 이름을 높이고 있다. 맹사성의 임금을 향한 충의정신이 담긴 「강호사시가」가 지금까지 전한다. 또한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향교가 아산 지역[신창향교, 아산향교, 온양향교]에도 세워져서 유교의 전통을 이어왔다.

1592년 임진년에 시작된 일본과의 7년간의 전쟁으로 조선은 패전을 거듭하면서 거의 모든 국토가 유린되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아산 지역 출신인 충무공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라 거북선을 앞세워 연전연승하여 나라를 구하였으나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적의 유탄을 맞고 순국하엿다.

근대 흥선대원군 정권기를 지나 개항기에 접어들면서 아산 지역도 행정구역 개편과 경제생활의 변화를 가져왔다. 반왕조와 반침략 투쟁으로서 민중들이 주도한 동학농민군의 봉기와 활동이 아산 지역에서도 활발하였고, 1894년 갑오개혁을 계기로 온양군, 신창군, 아산군으로 행정단위명이 군으로 통일되었다. 1904년에 이미 온양온천에 와 있던 일본인들이 온양온천을 강탈하여 해방기까지 지배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4월 4일 선장면에서 발발한 만세운동은 반일감정과 민족주의 사상이 아산 지역에서도 상당히 고조되었음을 반증한다.

광복 이후 일본군이 철수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6·25전쟁이 발발하여 온양행궁이 불타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전쟁 중 아산은 3개월간 북한 인민군 점령지가 되었고, 인민군의 야만적인 학정을 겪으면서 주민들의 반공의식이 강화되었다. 휴전이 되고 이승만 정부가 계속 국정을 이끌었지만 여러 번에 걸친 부정선거와 1960년 4월19일 시민혁명으로 이승만은 하야하고 내각책임제 헌법에 따라 총선거를 통해 아산 출신 윤보선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문화예술]

충청남도 아산시의 대표적 문화예술기관인 아산문화재단은 아산시 출연기관으로서 아산시에서 위탁하는 행사[아산 성웅이순신축제, 한여름 밤의 신정호 별빛축제, 은행나무길 축제 등]를 주관하며 아산시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다양한 장르의 공연과 교육 전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온양문화원은 지역의 향토문화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지역 고유문화 개발, 향토사 조사연구, 지역 문화행사 개최, 지역 전통문화 국내외 교류 등의 사업을 펼친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아산지회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최적의 여건과 환경 속에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아산시립합창단은 시민들의 정서 함양, 문화예술 욕구 충족, 음악 인구의 저변 확대, 합창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창단되었고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관광자원]

충청남도 아산시는 온천자원[온양온천, 아산온천, 도고온천]과 같은 자연자원, 문화전통자원[아산 외암마을, 온양민속박물관, 아산 이충무공 유허, 공세리성당, 아산 맹씨행단, 봉곡사 등], 생활과 자연자원[옹기발효음식전시체험관, 세계꽃식물원, 레일바이크, 아산 코미디홀, 신정호유원지, 아산환경과학공원, 은행나무길, 영인산자연휴양림영인산 산림박물관, 피나클랜드, 아산지중해마을 등], 산업적 관광자원[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등 모든 영역에서 가치 있고 특색 있는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숙박[300여 개 이상의 숙박시설], 교통[시티투어버스, 기차와 수도권 전철, 버스, 자전거 등], 레저[수상스키, 암벽등반, 수영, 빙상장, 야구장, 축구장, 등산 등] 등 관광에 수반되는 풍부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교육]

충청남도 아산시에는 2019년 3월 기준 유치원[23개원], 초등학교[46개교], 중학교[19개교], 고등학교[10개교], 대학교[6개교]가 있으며, 어린이집, 사설학원 등 많은 교육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아산시 교육정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아산시 미래장학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 고장 학교 보내기’ 사업을 통해 우수학생 유출을 막아 관내 학교의 면학 분위기 조성은 물론 본인 적성에 맞고 경쟁력 있는 대학과 학과로 많은 학생들이 진학하여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교육 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아산시 연합 방과후 학교인 ‘스마트 스쿨’은 아산시만의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으로서 공교육을 기반으로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고 개별 학생의 요구에 집중하는 사교육의 장점을 결합한 자기 주도 학습 중심 교육 프로그램이다. 또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안정적인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자 기숙사 경비를 지원하고, 학생 동아리 중심의 창의적 체험 활동에 활동비도 지원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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