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364
한자 高麗時代
영어공식명칭 Goryeo Period
이칭/별칭 한국의 중세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김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918년 - 고려 후삼국 통일
특기 사항 시기/일시 1392년 - 고려 멸망

[정의]

고려 건국 이후부터 고려 멸망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역사.

[개설]

고려시대에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는 3개 군현이 있었다. 인주(仁州), 온수군(溫水郡), 신창현(新昌縣)이 그것이다. 지금의 아산시 중심을 통과하는 곡교천을 기준으로 이북에 인주가 있었고, 이남 동편에 온수군, 서편에 신창현이 있었다. 3개 군현은 고려시대에 천안부(天安府)[현재 충청남도 천안시] 소속이었다. 또한 천안부와 함께 양광도(楊廣道) 또는 충청도 소속이었다.

고려시대에 전국의 조세를 13조창(漕倉)을 통해서 거두어 수도 개경[개성]으로 옮겼다. 이를 조운(漕運), 조운제라 하였다. 13조창 중 하나가 아주 하양창(牙州河陽倉)이었다. 하양창의 위치는 아산만 끄트머리인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노양1리[계양(桂陽)] 일대로 비정되고 있다.

[행정구역]

고려시대에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는 특수한 행정구역이 있었다. 바로 천안부의 월경지(越境地)가 아산 일원에 있었던 것이다. 월경지는 어떤 행정단위의 소속 영역 중 이웃 행정단위의 영역을 넘어 들어가 위치한 특수 구역을 말한다. 아산 지역에 있었던 천안부 소속 월경지는 4곳이었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는데,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동쪽에서 서쪽으로 모산면(毛山面), 돈의면(頓義面), 덕흥면(德興面), 신종면(新宗面)의 순서로 자리가 잡혀 있다. 주로 아산만삽교천 연안이었다. 다만 신종면은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 일대로 추정되고 있다. 신종면을 제외한 나머지 월경지들은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관할이 되어 있다.

[역사]

태조 왕건(王建)이 고려를 건국한 것은 918년(태조 원년) 6월이었다. 두 달 후인 918년 8월부터 아산 지역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였다. 따라서 고려 건국 직후부터 정부가 현재의 아산 지역에 큰 관심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왕건이 즉위한 918년에 충청 지역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모반이 여럿 발생하였다. 918년 6월의 환선길(桓宣吉), 같은 달 이흔암(伊昕巖), 7월의 청주[현재 충청북도 청주시], 8월의 웅주[현재 충청남도 공주시]와 운주[현재 충청남도 홍성군], 9월의 임춘길(林春吉), 10월의 진선(陳瑄)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모반 등 모두 6차례였다. 통일 전쟁기인 당시 충청 지역은 왕건의 고려군과 견훤(甄萱)의 후백제군이 첨예하게 각을 세우고 있었던 주요한 접경 지역이었다. 또한 해상로를 이용한 진군로 확보는 중요한 군사적 문제였는데, 아산만은 고려군의 매우 유용한 해상 진군로였다. 고려군 입장에서 반드시 확보해야 되는 해상로가 아산만에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왕건은 모반 수습 및 충청 지역 접경지에 대한 관리, 아산만 확보 등을 위해 비중 있는 책임자를 아주로 파견하였는데, 바로 김행도(金行濤)였다.

김행도는 고려 건국 후 광평시중(廣評侍中)을 지낸 인물이었다. 아주로 파견된 김행도의 직책은 동남도초토사(東南道招討使)·지아주제군사(知牙州諸軍事)였다. 김행도는 군사와 행정을 책임지면서 모반을 수습하고 아산만 일대를 비롯한 충청 지역을 안정화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김행도는 태조 왕건이 부여한 임무를 잘 수행하여 모반을 수습하고 아산만 일대를 고려의 영역으로 안정화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와 같이 아산 지역은 고려 건국 직후부터 주목받는 지역이었다.

제11대 왕인 문종(文宗)[재위 1046~1083]은 고려시대 최고의 문화적 번영기를 이룩한 왕이었다. 그런데 문종은 말년에 몸이 안 좋아서 온천욕을 즐겼다. 1082년(문종 36) 9월에 문종은 온천욕을 하기 위해 온수군에 행차하였다. 이때의 온수군 온천은 지금의 온양온천(溫陽溫泉)을 말하는 것이다. 온양온천은 고려시대에도 명성이 높았던 것이다.

문종 이후 아산 지역이 기록에 등장한 것은 고려와 몽골의 전쟁 시기였다. 1231년(고종 18)부터 몽골이 고려에 침입하기 시작하였다. 고려와 몽골의 전쟁은 수십 년간 지속되었는데 아산 일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온수전투가 발발하였던 것이다. 1236년(고종 23) 9월에 온수군에서 몽골과 전투가 벌어졌는데, 현려(玄呂) 등이 중심이 되어 몽골군을 격퇴하였다. 20년이 지난 1256년(고종 43) 6월에 또 온수현(溫水縣)[이때는 지명이 온수군이 아닌 온수현으로 나타난다.]에서 몽골과 전투가 벌어졌다. 이때는 장군 이천(李阡)이 지휘한 고려군이 몽골군을 격퇴하였다. 이듬해인 1257년(고종 44) 몽골군이 아산 지역에 다시 침공해 왔지만 이번에는 정인경(鄭仁卿) 등이 격퇴하였다. 이때에 천안부 사람들이 몽골의 침략으로 인한 화를 피하기 위해 선장도(仙藏島)[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로 피란을 갔다. 천안민들의 선장도 입보(入保)는 몽골과의 전쟁이 끝난 후에 마무리되었다.

그런가 하면 1390년(공양왕 2) 6월에 왜구(倭寇)신창현 도고산(道高山) 아래로 침략해 왔지만 고려 관군들이 토벌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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