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617
한자 牙山五峰寺三層石塔
영어공식명칭 Three-story Stone Pagoda of Obongsa Temple, Asan
이칭/별칭 오봉사 삼층석탑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설화산길 156 [장존동 500]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천경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987년연표보기 -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60년 전후 -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 이전
문화재 지정 일시 2015년 8월 5일연표보기 -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 아산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
현 소재지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 - 충청남도 아산시 설화산길 156[장존동 500]지도보기
원소재지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 - 충청남도 아산시 장존동
성격 석탑
양식 삼층석탑
관련 인물 정홍렴
재질 화강석
크기(높이) 전체 높이 277㎝
소유자 오봉사
관리자 오봉사
문화재 지정 번호 아산시 향토문화유산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장존동에 있는 고려 초기의 삼층 돌탑.

[개설]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은 2015년 8월 5일 아산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온양군읍지」의 기록, 『1872년 군현지도』「온양군」의 삼층석탑 그림과 표기 등을 보면 오봉사는 서라산 북쪽에 있던 조선시대 남산사(南山寺)였다. 온양의 남산 격인 서라산은 설화산의 본래 우리말 이름이며 조선시대의 ‘西達山’은 ‘서달산’이 아닌 ‘서라산’의 한자 표기이다. 이 서라산이 다섯 개 봉우리여서 오봉산이라 하고, 남산사였던 절을 오봉암[2015년 오봉사로 개칭]이라 한 것은 모두 일제강점기의 일이었다.

[건립 경위]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은 문화재 지정을 위한 2010년의 조사 과정에서 건립 경위를 기록한 명문이 발견되어 987년(성종 6)에 탕정군 호족 정홍렴(鄭弘廉)의 가족이 조성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명문은 상층기단 갑석의 윗면에 8행 55자로 음각되어 있다. 987년(옹희 4) 2월에 탕정군 제2호장(戶長) 정홍렴의 큰누이가 공경하는 마음으로 보탑을 조성했으며, 탑을 깎은 장인인 대백사(大伯士)는 덕달(德達)이고, 석탑 조성 불사의 실무 책임자인 도량행자(道粮行者)는 귀달(貴達), 명문을 짓고 새긴 집필승(執筆僧)은 법숭(法崇)이라는 내용이다.

옹희 4년은 고려 성종 6년으로 서기 987년이니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이 고려 초기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홍렴은 나말여초에 탕정성 축조를 감독하며 공을 세워 탕정군 지역의 호족이 된 온양정씨 집안의 인물이다. 이때 쌓은 탕정성은 지금의 배방산성으로 추정한다. 탕정군은 백제 때부터 통일신라 때까지의 행정지명으로 고려시대 온수군을 거쳐 조선시대 온양군, 즉 지금의 아산시 온양1~6동·탕정면·배방읍·송악면 일대에 해당한다.

고려 초의 호장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던 탕정군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며 모든 행정업무를 담당했던 호족이었으니, 제2호장은 당시 탕정군의 호장 몇 명 중 서열 2위의 실세였다. 석탑 외에 사찰 또는 암자도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와 관련된 사실은 알 수 없다.

[위치]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은 아산시 설화산길 156[장존동 500] 오봉사 경내에 있다. 온양군 관아가 있던 읍내동, 통칭 구온양 남쪽에 있는 설화산의 북쪽 중턱이다. 읍내동 남동쪽의 지방도 623호선[순천향로]에서 온양천을 건너는 좌부교 동쪽 끝에서 남쪽으로 온양천 제방 도로와 마을길을 따라 좌부동 마을을 지나며 1.6㎞ 남짓 가면 오봉사에 도달한다.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은 대웅전의 석축 아래 절 마당에 세워져 있다. 현재 위치는 조성 당시의 위치가 아니며 정확한 원위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형태]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은 화강석으로 조성되었으며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부는 지대석이 없으며 이중기단이다. 하층기단은 저석, 면석, 갑석을 한 돌로 조성하였으며 면석 각 면에 안상을 2구씩 표현하였다. 갑석 윗면에 상층기단 받침을 매우 낮게 돌출시켜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보여 준다. 상층기단은 기단석과 갑석을 별도의 돌 1매로 조성하였고, 기단석에는 우주[귀기둥]와 탱주[버팀기둥]가 새겨져 있다.

상층기단 갑석은 아랫면에 부연을 표현하였고 윗면은 얼핏 보아 3단처럼 보이지만 모두 5단으로 탑신받침을 돌출시켰는데 아래로부터 낮고 둥글게[호형], 각지게[각형], 둥글게, 둥글게, 아주 낮고 각지게 만들었다. 맨 위의 각진 받침은 잘 안 보일 정도이며 그 부분 안쪽에 글씨가 새겨져 있어서 명문을 위한 테두리가 된다.

탑신부는 모두 삼층이며 탑신[몸돌]과 옥개석[지붕돌]이 각각 1매의 돌로 조성되었다. 탑신에는 모두 우주가 표현되어 있다. 고려시대의 특징대로 초층 탑신[처음의 탑 기단과 상륜 사이의 탑의 몸]에 네모진 사리공[16×16×6.3㎝]이 마련되어 있다. 옥개석은 모두 단의 옥개받침이 있고 두꺼운 편이어서 낙수면 경사가 급하며 네 귀의 반전이 이루어져 있다. 초층 탑신의 사리장치 보호를 위해 초층 옥개석 하부에는 빗물을 차단하는 절수구[절수홈]를 마련했으며 2층·3층 옥개석에는 절수구가 없다.

삼층 옥개석 윗부분에 상륜부에 해당하는 노반[탑의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을 돌출시켜 놓아서 삼층 옥개석과 노반이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노반 가운데에 지름 약 6㎝의 찰주공(擦柱孔)이 있다. 노반 외에 나머지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다. 노반까지의 전체 높이는 250㎝이고 그 위에 올려진 자연석까지 포함하면 높이 277㎝이다.

[금석문]

옹희사년정해이월일(雍凞四秊丁亥二月日)

보살계제자탕정군(菩薩戒第子湯井郡)

제이호장정홍렴의(第二戶長鄭弘廉矣)

가구신명대낭구명지(家口信名大娘救命之)

쌍경조보탑(双敬造寶塔)

대백사덕달(大伯士德達)

도량행자귀달(道粮行者貴達)

집필승법숭(執筆僧法崇)

[옹희사년 정해 이월 일에 보살계 제자 탕정군 제2호장 정홍렴의 집안에서 청신자인 큰누이가 구명을 기원하며 공경하는 마음으로 보탑을 조성하옵니다. 대백사 덕달, 도량행자 귀달, 집필승 법숭]

5행의 첫 글자 ‘双(쌍)’은 ‘幷(병)’ 또는 다른 글자로 판독될 수도 있다.

[현황]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의 기단부 지대석과 상륜부가 없다. 현재 위치가 조성 당시의 위치가 아니며, 현재 위치 아래[북쪽] 40여m 지점에 무너진 상태로 있었다고 하며, 절 아래 ‘자비원’이라는 건물 앞에 있었다고도 하는데 자비원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는다. 60여 년 전에 현재 위치로 옮겨 세웠다고 하니 대략 1960년 전후의 일이다. 2010년에 충청남도 문화재로 지정을 추진할 당시 문화재 지정에 반대하던 주민들은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이 여러 부재와 새로 만든 석재를 쌓아 만든 가치 없는 탑이라고 하였으나 상륜부의 자연석 외에는 모두 원래의 석탑 부재로 판단된다.

정확히 어느 시기였는지 알 수 없으나 무너지는 과정에서 파손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옥개석의 훼손이 심한 편이다. 지금의 기단부 상층 기단석은 윗부분 너비가 아래보다 약간 넓다. 전통 건축의 안쏠림을 생각하면 옮겨 세울 당시 뒤집어 놓은 것으로 생각된다.

[의의와 평가]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은 여러 가지 특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여겨졌는데, 2010년에 명문을 통해 사실로 확인되었다. 석탑에 명문이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으며, 특히 초층 탑신이 올려져 보이지 않는 상층기단 갑석 윗면에 새겨진 극히 드문 사례가 된다. 없어진 부재도 있고 옥개석 등도 많이 파손되어 있지만, 명문을 통해 석탑의 건립 시기와 후원자, 발원자, 제작자가 확인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를 통해 석탑 양식의 변천만 아니라 고려 초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주요 세력을 파악할 수 있고, 당시의 사회상을 이해할 수 있으므로 역사적, 문화적, 지역적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