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1455
한자 現代
영어공식명칭 Contemporary Times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홍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5년 8월 15일 - 광복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5년 10월 6일 - 미군 주둔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8년 5월 10일 - 5·10총선거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8년 8월 15일 - 대한민국 정부 수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0년 6월 25일 - 6·25전쟁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0년대 - 새마을운동 시작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6년 1월 1일 - 아산군 온양읍이 온양시로 승격 분리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 - 아산군과 온양시 통합, 아산시로 개편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9년 5월 1일 - 배방면에서 배방읍으로 승격

[정의]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충청남도 아산의 전반적인 변화상.

[광복 후의 아산]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일제의 침략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아산 지역을 비롯한 한반도에는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에 미소(美蘇) 양군이 들어와 군정을 실시하게 되었다. 광복 직후 아산에서는 8월 15일 아산군수 정홍섭(鄭泓燮)이 행정대책회의를 개최하여 시국 대책 방안을 마련하고자 하였고, 하루 뒤인 8월 16일 아산의 유지들이 자치회를 구성하여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기로 합의하였다. 이후 정홍섭 군수는 스스로 사퇴하였다. 군수 이하 군 직원들이 한국인들 스스로 구성한 자치회에 행정권을 자발적으로 이양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로도 일제 군경은 실제로 미군이 아산 지역에 들어오기 전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었고, 1945년 9월~10월의 건국준비위원회[이후 인민위원회로 이름이 바뀜] 아산지부와 아산군 자치회 간의 좌우 대립 등 자치활동을 방해하는 요소가 많이 발생하였다.

1948년 5월 10일 남한에서만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제헌국회가 구성되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기초가 마련되었으며,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였다. 5·10총선거 당시 아산군에서는 무소속 서용길(徐容吉)이 당선되었다. 서용길은 좌우합작에도 참여하는 등 진보적인 성향이 강한 인물이었다. 제헌국회의원으로서 반민족행위처벌특별검찰부 검찰관으로 활동하였다.

[관광산업의 발전과 아산]

6·25전쟁 이후 이승만 정권 시절 아산 지역은 농업과 어업이 중심을 이루는 농촌사회이기도 하였지만 온양온천이 있어 관광산업이 주요 산업 중 하나였다. 1921년 천안~온양온천 간 철도가 먼저 뚫릴 정도로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온양온천은 광복 이후에도 여전히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특히 196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현충사 성역화 사업이 이루어지면서 관광산업의 발전은 배가되었다. 1962년 현충사 경내를 1만 7835㎡[5,395평]로 확장하고, 유물 전시관·사무실 등을 신축하였다. 196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성역화 사업을 시작하여 53만 9160㎡[16만 3096평]의 경내에 한식 팔작지붕의 본전(本殿)과 내삼문(內三門), 홍살문, 정려(旌閭), 정문(旌門), 고택(古宅), 충무정(忠武井), 활터, 유물 전시관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성역화가 완료될 즈음 『난중일기』가 도난당하는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다시 찾아왔으며, 1967년 현충사 전역이 사적 제155호로 지정받기에 이르렀다.

1970년대 아산 지역은 도고온천의 개발과 연계하여 온양온천~현충사 또는 도고온천~현충사로 이어지는 관광산업이 성하게 되었다. 수학여행이나 신혼여행지 외에도 당일치기 나들이 장소로서 각광을 받았고, 온양관광호텔을 비롯한 호텔과 대형 여관 등의 숙소가 많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1970년 10월 14일 오후 4시경 온양온천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오던 경서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모산 건널목에서 장항선 열차에 부딪혀 4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1970년대 아산의 발전상은 새마을운동과도 연계되는 측면이 있다. 박정희 정권이 산업화 위주의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농업이 보조수단이 되었다. 이에 농업 역시 자생을 통하여 경제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였고, 이것이 구체화된 것이 새마을운동이었다. 아산 지역 역시 농업 발전에 힘썼는데, 1962년 농업협동조합 경진대회에서 기곡리협동조합이 2등을 차지하였으며, 1967년 도고면 와산리 노기남이 새농민상을 타기도 하였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시행되면서 행정부서에 새마을과나 새마을계를 설치하고, 면-동[리]으로 이어지는 마을 단위에 새마을지도자를 지정하였다.

1973년 아산만방조제, 1979년 삽교천방조제가 건설되어 지역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1980년대에 들어 온양읍내 인구가 점점 늘어나면서 1986년 아산군과 온양시가 분리되었다. 이후 온양시는 온양온천, 신정호, 온양민속박물관을 연계하여 관광업 중심의 도시가 되고자 노력하였으며, 아산군은 온양시와 함께 현충사, 도고온천, 아산온천, 외암민속마을 등의 관광자원을 연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관광수요는 경기 활황과 함께 지속적으로 늘어났으며, 이를 수용하기 위한 각종 도시개발계획이 수립되었다. 대표적으로 온양온천역 옆에 있던 온양시외버스터미널[현재 아산시외버스터미널]이 모종동으로 이전하였으며, 온양시내로 들어오는 도로들이 4차선으로 확장되었다.

[첨단산업 중심 도시로 변모하는 아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산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였다. 1990년 염치면이 염치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 행정구역 개편으로 아산군과 온양시가 통합되어 아산시를 이루었다. 또한 농업과 관광산업 중심의 도시 구조가 점점 첨단산업 중심으로 변모해갔다. 1996년 인주면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이 준공되고, 2000년대에 들어서 탕정면배방읍에 삼성전자와 삼성반도체 계열이 입주하면서 2004년 인구 20만 시대로 진입하였다.

2004년 배방읍 장재리경부고속철도 천안아산역[온양온천]이 영업을 개시하면서 배방읍탕정면을 중심으로 하는 동부 지역은 첨단산업과 상업, 주거가 결합된 형태로 발전하였다. 서북 지역은 아산만 연계 산업지구, 서남 지역은 전통적인 농업지구로 바뀌어갔다.

2010년대 아산시는 첨단산업과 관광산업, 그리고 전통적 농업이 결합된 도농복합 도시에서 첨단 도시로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수도권 전철 1호선신창역까지 연장되면서 관광수요가 1980년대 대비 20배가량 증가하였다. 또한 현대·삼성 계열의 첨단산업을 기반으로 한 발전을 통해 인구수가 2018년 12월 말 기준 31만 명을 돌파하였다.

[의의 및 평가]

2019년 기준 ‘더 큰 아산, 행복한 시민’을 위해 시민 중심 자치도시, 인구 50만 시대 자족도시, 나눔 성장 행복도시라는 시정 목표를 통해 인구 50만 아산시대를 준비하는 도시 인프라 구축과 안전하고 공정하며, 누구나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아산을 만들고자 다방면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지속적인 발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배방읍·탕정면·인주면 등의 산업지구와 송악면·도고면·신창면·선장면·영인면 등의 전통적 농업지구와의 불균형적인 발전 양상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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