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정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351
한자 湯井郡
영어공식명칭 Tangjeong-gu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강종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671년연표보기 - 탕정군에서 탕정주로 승격
개정 시기/일시 681년 - 탕정주에서 탕정군으로 격하
개정 시기/일시 940년연표보기 - 탕정군에서 온수군으로 개칭
개정 시기/일시 1414년연표보기 - 온수군과 신창현을 통합하여 온창군으로 개칭
개정 시기/일시 1416년 - 온창군에서 온수현 분리
개정 시기/일시 1442년연표보기 - 온수현에서 온양군으로 승격
개정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온양군에서 충청남도 아산군으로 통합 개편
개정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읍에서 충청남도 온양시로 승격 분리
개정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충청남도 온양시에서 아산군과 재통합되어 충청남도 아산시로 개편

[정의]

백제시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개설]

탕정군(湯井郡)은 백제시대 아산 지역을 관할하기 위해 설치한 행정조직이다. 아산 지역이 탕정군으로 편제된 시기는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지만, 사비기(泗沘期)에 지방통치조직으로 방군성제(方郡城制)가 실시되었으므로 이때 탕정군으로 편제되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영현(領縣)으로 아술현(牙述縣)굴직현(屈直縣)을 두고 있었으며 탕정군의 치소(治所)는 탕정성(湯井城)으로 읍내동산성(邑內洞山城)에 비정된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백제는 사비기에 지방통치조직으로 방군성제를 실시하였는데, 이때 아산 지역이 탕정군으로 편제되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23 온조왕 36년에 "가을 7월에 탕정성을 쌓고 대두성(大豆城)[대두산성(大豆山城)]의 백성들을 나누어 살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삼국사기』 권36 잡지5 지리3에는 "탕정군은 본래 백제의 군이었는데, 문무왕 11년 당나라 함형 2년[671년]에 주(州)로 삼고 총관(摠管)을 두었다가 함형 12년[681년]에 주를 폐지하고 군으로 삼았다. 경덕왕이 그대로 썼는데, 지금의 온수군(溫水郡)이다. 영현이 둘이다. 음봉현(陰峯縣)[또는 음잠(陰岑)이라고도 한다.]은 본래 백제 아술현(牙述縣)으로 불렸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의 아주(牙州)이다. 기량현(祁梁縣)은 본래 백제 굴직현(屈直縣)으로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의 신창현(新昌縣)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아산 지역은 마한 연맹체가 해체된 이후 머지않아 백제의 직접 지배 영역으로 편제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百濟本紀)에 따르면, 18년(온조왕 36) 7월에 탕정성을 쌓았으며 25년(온조왕 43)에는 왕이 아산 벌판에서 5일 동안 사냥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탕정’이라는 지명은 백제 초기부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산 지역은 한성 초기에 마한의 병합 과정에서 백제의 영역으로 편제되었는데, 이들 지역을 관할하기 위해 탕정성을 축조하였다. 따라서 탕정성탕정군이 설치되기 이전에 아산 지역을 관할하기 위해 설치한 행정조직이자 치소였을 가능성이 높다.

백제는 사비기에 지방통치조직으로 방군성제를 실시하였는데, 이때 아산 지역은 탕정군으로 편제되었다. 그리고 영현으로 아술현굴직현을 두었다. 여기서 현(縣)은 성(城)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된다. 백제에서 성이 현으로 바뀐 시기를 무왕 대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당대에 현이 행정 명칭으로 사용된 예는 확인되지 않는다. 군에는 군장(郡將) 3인이 파견되어 행정과 군사 등의 업무를 분장하였다.

탕정군의 치소는 탕정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읍내동산성에 비정된다. 읍내동산성은 현재 아산시 중심에서 동남쪽으로 2㎞ 떨어진 읍내동 뒷산에 위치하고 있는데, 읍내동산성은 동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봉우리를 에워싸면서 삼태기형으로 축조된 석축 산성이다. 성의 둘레는 약 970m이며 성 안에서는 동벽·남벽·북벽에 3개의 문지(門址)를 비롯해 건물지, 우물터, 그리고 백제시대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 등이 확인되었다.

[변천]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인 671년(문무왕 11) 탕정군에서 탕정주(湯井州)로 승격되어 총관(摠管)을 두었다가, 10년 뒤 681년(신문왕 1) 다시 탕정군으로 격하시켜 웅주(熊州)에 예속시켰다. 경덕왕 때 군현명의 개정[군현제]이 이루어졌지만 그대로 탕정군이라 하였고, 음봉과 기량 등을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초인 940년(태조 23) 온수군(溫水郡)으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한때 천안부(天安府)에 예속시켰으며, 1172년(명종 2)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4년(태종 14) 신창(新昌)을 합쳐 온창군(溫昌郡)으로 개칭하였다가, 1416년(태종 16) 다시 나누어 온수현(溫水縣)을 두었다. 1442년(세종 24) 세종이 온천에 행차한 뒤 온양군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아산군으로 통합되었다. 1986년 온양읍이 온양시로 승격 분리되었다가, 1995년 아산군과 온양시가 재통합되어 현재의 아산시가 되었다.

탕정군은 현재 아산시 중심 시가지 지역과 탕정면·배방면·송악면 일대, 아술현영인면·인주면·둔포면·음봉면·염치면, 굴직현신창면·선장면·도고면 등에 비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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