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지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347
한자 目支國
영어공식명칭 Mokji-guk
이칭/별칭 월지국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집필자 강종원

[정의]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삼한시대 마한의 소국.

[개설]

마한(馬韓)은 삼한시대 때 54개의 소국(小國)으로 이루어진 정치 연맹체이다. 목지국(目支國)은 54개 소국 중의 하나로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었다고 비정된다. 목지국은 『삼국지』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는 ‘월지국(月支國)’으로 기록되어 있다. 초기 철기시대 이래 충청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에서 형성·발전되어 온 토착 정치집단의 하나이다. 백제국(伯濟國)이 마한의 주도 세력으로 성장하기 전까지 마한 소국 연맹체의 중심 세력이었다. 목지국의 중심지는 곡교천을 중심으로 한 천안·아산 일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형성 및 변천]

목지국은 삼한을 대표하는 맹주국이었다. 신지(臣智)[삼한 소국의 정치적 지배자]인 진왕(辰王)은 마한 소국 연맹체의 맹주로서 진한(辰韓), 변한(弁韓) 소국의 일부에 대하여 지배권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왕은 스스로의 의사에 의해 마한 소국 연맹체의 연맹장(聯盟長)이 될 수는 없는, 정치권력이 아직 미약한 지배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왕은 삼한 소국에 대한 통제권을 기반으로 한군현(漢郡縣)과의 교섭을 주도하였다. 이러한 진왕의 역할은 마한 소국들에 대해 상징적 대표권과 실질적 통제권 양자 모두를 지닌 것이었다.

목지국의 존속 시기 및 진왕의 지배 영역과 지배 성격에 대해서는 해석이 다양하다. 진왕은 삼한 전체를 통솔한 지배자라는 해석과 부족 연맹장으로서 상징적인 의미가 강한 존재라는 해석, 3세기경의 백제 고이왕과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목지국 진왕의 진한·변한 소국 지배에 관한 기록에 대해서도, 이를 중국 군현(郡縣)에 근접한 한(韓) 소국과 멀리 떨어진 소국 사이에 형성된 공납 관계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중국 군현과의 교역 과정에서 경상도 방면의 일부 정치집단들에 대하여 확립된, 마한 소국의 우월한 위치가 반영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처럼 목지국과 관련해서는 진왕 문제와 함께 중심 연대, 지배 영역, 지배 성격 등을 둘러싸고 아직 많은 쟁점이 남아 있다.

목지국은 백제에 병합되었는데, 온조왕 대에 마한의 멸망은 천안과 아산 일대에 기반을 두고 있었던 목지국의 병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삼국사기』 백제본기(百濟本紀)에는 온조왕 대로 기록하고 있지만 고이왕 대로 이해된다. 246년(고이왕 13) 한(韓) 세력과 중국 군현 세력과의 충돌로 마한 연맹체가 해체되었고, 백제가 등장하면서 결국 백제가 마한 연맹체의 맹주국인 목지국을 복속하였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위치 비정/행정구역상의 구분]

목지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이나 동남구 청당동 일대로 비정하는 견해가 있는데, 유적·유물을 통해 유력한 후보지로 주목되고 있다. 다음은 ‘목지’와 미추홀(彌鄒忽)의 ‘미추’가 글자는 다르나 음(音)이 같은 것에 착안하여 인천광역시에 비정하기도 한다. 또한 청동기 문화의 분포에 주목하고, 특히 마한 사회의 중심적 위치였다는 점과 54개 소국의 배열에서 14번째로 기록된 점 등에 의해 충청남도 예산군에 비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백제의 성장에 따라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일대에서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으로 중심지가 이동한 것으로 보는 견해, 아산만을 포함한 충청남도 아산시 일대로 보는 견해, 공주시나 전라북도 익산시 지역인 금강 유역에 위치를 비정하는 견해 등도 있다.

최근의 고고학적 조사 결과 충청남도 천안시의 청당동 원삼국 유적을 비롯해 인근의 신사리유적·화성리유적, 아산시의 배방읍·탕정면 일대에서도 원삼국시대 유적이 다수 확인되어 목지국의 중심지는 곡교천을 중심으로 한 천안·아산 일대였을 것으로 비정된다.

[관련 기록]

『삼국지』 권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제(第)30 한(韓)조에 "한은 대방(帶方)[대방군]의 남쪽에 있는데, 동서는 바다로 막혀 있고, 남쪽은 왜와 접경하니, 대략 4,000리쯤[약 1,571㎞] 된다. [한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마한, 둘째는 진한, 셋째는 변한을 말하며 진한은 옛날의 진국(辰國)이다. …[마한의 나라로는] 원양국(爰襄國), 모수국(牟水國)… 월지국… 치리국국(致利鞠國), 염로국(冉路國), 아림국(兒林國) 등 모두 50여 국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온조왕 본기에는 "26년 겨울 10월에 왕이 군사를 내어 겉으로는 사냥한다고 하면서 몰래 마한을 습격하여 드디어 그 국읍(國邑)을 병합하였다. 그러나 원산성(圓山城)과 금현성(錦峴城)의 두 성만은 굳게 지켜 항복하지 않았다. 27년 여름 4월에 두 성이 항복하자 그 백성들을 한산(漢山) 북쪽으로 옮기니, 마한은 드디어 멸망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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