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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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에 편찬된 『1872년 군현지도』에 수록된 신창현의 지도. 『1872년 군현지도』 신창현 편은 1872년 현재의 아산시 신창면, 도고면, 선장면 일대를 묘사한 군현 지도이다. 고종 즉위 이후 재정 확보, 군제 정비를 위하여 1871년 열읍지도등상령(列邑地圖謄上令)이 발표되고, 각 군현에서는 지도를 제작하여 1872년에 올렸는데 이때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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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에 편찬된 『1872년 군현지도』에 수록된 온양군의 지도. 『1872년 군현지도』 온양군 편은 1872년 현재의 아산시 배방읍, 송악면 일대를 묘사한 군현 지도이다. 고종 즉위 이후 재정 확보, 군제 정비를 위하여 1871년 열읍지도등상령(列邑地圖謄上令)이 발표되고, 각 군현에서는 지도를 제작하여 1872년에 올렸는데 이때 제작된 온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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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고종 원년)부터 1910년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역사. 개항기(開港期)는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기존의 봉건적인 사회 질서를 타파하면서 근대적 사회를 지향해 가던 시기이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은 본래 온양군, 신창현, 아산현으로 충청도 소속이었으나,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갑오경장]의 지방제도 개혁으로 온양군, 신창군, 아산군으로 개편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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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었던 3개의 군현에 설치하였던 관사. 객사(客舍)는 조선시대 읍치(邑治)[고을 수령이 일을 보는 관아가 있는 곳]의 중심이며 핵심시설이었던 관사(館舍)로, 전패(殿牌)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다. 객사는 수령이 집무를 보던 동헌(東軒)보다 높은 곳에 있었고, 관아 시설 중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화려하며 전망 또한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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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의 한가운데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하천. 충청남도 아산시는 조선시대에 아산현·온양군·신창현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아산현은 곡교천 북쪽에 있었고, 신창현과 온양군은 남쪽에 있었다. 이 곡교천에는 일찍부터 남북 지역을 잇는 다리가 많았다. 그중 충청수영로라는 주요 교통로가 있었는데, 이 도로의 아산시 염치읍 곡교리와 신창면 수장리 사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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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들. 공세들은 조선시대에 공세창(貢稅倉)이 있던 곳이다. 마을 이름이 ‘공세리’인 것처럼 ‘공세들’이란 명칭도 공세창에서 유래하였다. 즉, 공세리 ‘앞들’이란 뜻이다. 공세창은 조창(漕倉), 즉 세곡(稅穀)의 수송과 보관을 위해 설치해 두었던 곳집을 말한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조선 전기 전국에 9개의 조창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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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교육 연혁.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는 조선시대 향교와 서원을 거쳐 개항기 근대 학교, 광복 이후 초·중·고 학교, 6·25전쟁 이후의 교육과정, 1970년대~2000년대 시대 변화에 따른 교련 교육·농어촌 거점학교·방과후학교·주말학교 등 다양한 교육과 학교 형태가 운영되었다. 2019년 3월 기준 유치원 60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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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온양5동에 속하는 법정동. 기산동(岐山洞)은 행정동인 온양5동의 관할을 받으며 기산1통~기산2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산동의 ‘기산(岐山)’은 ‘거리미’라고 하며 온양군과 신창군의 갈림이라는 의미이다. 기산동은 본래 온양군 서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에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기산리, 성산리와 신평리, 지라리를 병합하여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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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아산현의 복현에 힘쓴 문신. 김구(金鉤)[1381~1462]는 1416년(태종 16) 문과 친시(親試)에 급제하여 사온서직장(司醞署直長)이 된 뒤 세종, 단종, 세조에 걸쳐 홍주판관(洪州判官), 사간원(司諫院) 우사간대부(右司諫大夫),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 집현전부제학(集賢殿副提學),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 중추원지사(中樞院知事) 등을 지냈다. 특히 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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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에 거주하였던 문신. 남발(南橃)[1561~1646]은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조선 광해군 대에 활약하였던 문신이다. 온양군 설애산(雪厓山)[현재 아산시 송악면 역촌리] 아래에 집을 짓고 살았다. 남발의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공제(公濟), 호는 화은(華隱)이다. 조선 개국 일등공신 영의정 남재(南在)의 8세손이다. 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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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당진시와 경기도 평택시 사이[한반도 중부]에 자리하며, 조차가 크고 만입의 깊이가 깊어 고대 이래로 국내외 지역과 다양한 형태로 문물이 교류되는 만. 한반도 중부에 자리 잡은 충청남도 아산만은 서해안에 발달한 수많은 만 가운데 특히 만입의 깊이가 깊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만이다. 만의 입구인 충청남도 당진의 한진(漢津) 부근에서 가항종점(可航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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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의 행정 사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관. 배방읍 행정복지센터는 충청남도 아산시를 구성하는 2개 읍[염치읍, 배방읍] 중 배방읍 12개 법정리, 73개 행정리 429개 반의 지역사업과 지역주민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고, 지역주민에게 문화·복지·편의 시설을 제공하는 기관이다. 배방읍 행정의 능률과 주민 편의를 도모하고 가족관계 등록 및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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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송곡리 곡교천 하안에 있던 나루. 배턱거리는 온양군 읍치와 아산현 읍치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상에 있던 나루로 곡교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오늘날의 아산시 염치읍 송곡리와 권곡동을 연결하였다. 곡교천 중류에 해당하여 수량이 많지 않고 하천의 폭도 넓은 곳은 아니었지만 물이 불어나는 여름에는 사람들이 배를 이용하여 하천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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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초·중엽 비변사에서 편찬한 충청남도 아산 신창현, 아산현, 온양군의 채색 방안 지도. 『비변사인 방안 지도』는 18세기 초·중엽 비변사에서 군사 목적으로 편찬한, 『호서지도』에 수록된 신창현, 아산현, 온양군의 채색 방안 지도이다. 18세기 초·중반 군사적 필요에 의해 비변사에서 각 도에 편찬령을 내리고, 감영은 소속 각 읍에 지도 제작을 명하여 각 읍이 지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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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던 토지신과 곡식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흙이나 돌로 쌓아 올린 터. 사직단(社稷壇)은 본래 왕이 사직신((社稷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지만, 주현(州縣)에서는 지역 수령이 대신 제사를 지냈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고을에는 사직단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는 아산현·온양현·신창현에 각각 있었다. 사직단은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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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의 젖줄로 일컫는 아산의 중심 하천. 충청남도 아산시의 중앙을 가로질러 흐르는 곡교천(曲橋川)은 총 33개의 지천을 거느린 하천으로, 그 주변에서 농경 산업과 공업 등이 발달하였다. 곡교천의 곳곳에서 과거와 현재 아산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곡교천은 충청남도 아산시를 대략 남동에서 북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주요 하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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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에 있는 시기 미상의 토축 산성. 성안말산성은 나지막한 구릉과 평지를 에워싼 평산성(平山城)[평지와 산을 이어 쌓은 성]이며, 전체가 토성(土城)이다. 성안말산성의 축조 시기와 경위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다. 지표상에서 수습되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까지의 토기 조각,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기와 조각 등을 통해 대체로 나말여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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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아산 지역 백성들의 안녕을 위하여 성황신을 모셨던 당집. 성황사(城隍祠)는 조선 건국 후 중앙집권화 과정에서 산천(山川)·성황(城隍)·풍운(風雲)·뇌우(雷雨) 등 여러 명칭으로 부르던 민간신앙의 단(壇)들을 하나의 성황사로 통합하여 주(州)·부(府)·군(郡)·현(縣)의 행정단위마다 하나씩 설치하고, 지방관으로 하여금 봄·가을로 제사 지내게 하였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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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방축동에 있는 인공호수에 조성된 호수공원. 신정호의 공식 명칭은 마산저수지(馬山貯水池)이며 농업용 저수지로 일제강점기인 1927년 준공되었다. 같은 시기에 중건된 신정관이 위락시설로 이용되어 관광지로 각광을 받게 되면서 통칭 ‘신정호’라 불렸다. 1980년대 들어 관광지로서 침체되기 시작하자 여러 가지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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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서 발원하여 가덕리에서 곡교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신창천(新昌川)은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중앙부를 북쪽으로 흐른다. 하천 명칭은 이 ‘신창면’에서 유래하였다. 신창면은 본래 조선시대의 신창현 치소(治所)[지역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이 있는 곳]가 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아산현·신창현·온양군 등 세 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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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장존동에 있는 고려 초기의 삼층 돌탑.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은 2015년 8월 5일 아산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온양군읍지」의 기록, 『1872년 군현지도』「온양군」의 삼층석탑 그림과 표기 등을 보면 오봉사는 서라산 북쪽에 있던 조선시대 남산사(南山寺)였다. 온양의 남산 격인 서라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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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있는 조선시대 전통 마을.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마을은 조선 후기 이후 500여 년 동안 예안이씨가 세거(世居)해 온 마을이다. 외암마을 북서쪽 역촌리에는 고려시대부터 역(驛)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시흥역(時興驛)이 있었는데, 외암마을 자리는 그 역에서 관리하는 말을 키우던 장소여서 외양골[오양골]이라 하였다. ‘외양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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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에 있는 고려시대 당간을 걸어두기 위하여 세운 기둥. 당간지주는 규모가 큰 사찰의 입구 맨 앞에 세워졌던 불교 유적이다. 당(幢)은 농악에 쓰는 농기(農旗) 비슷하게 길게 늘어뜨린 형태의 깃발이며 사찰에 법회 등 행사가 있을 때 거는 불교 용구이다. 이 당을 높이 매다는 긴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고, 당간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지지하기 위해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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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온양6동[읍내동]에 있는 조선시대 비석군.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아 건물로 아문(衙門)과 동헌(東軒)이 남아 있는 읍내리의 관아는 근년까지도 관공서로 활용되었는데, 온주아문(溫州衙門)의 외벽 담에 옛 온양군에서 재임했던 관리들과 관찰사에 대한 송덕비를 모아서 세웠다. 2008년에는 관내에 산재한 홍석주와 김영식, 이응우의 비석을 추가로 이전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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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북부에 있는 시. 아산군은 1914년 3개 군현[온양군, 아산현, 신창현]이 통합되어 생겨났으며, 1986년 온양시가 분리 독립하였으나 1995년 다시 아산군과 온양시가 통합되어 도농복합시인 아산시가 되었다. 충청남도 아산시는 동단[배방읍 휴대리, 동경 127° 06′ 32″], 서단[선장면 신덕리, 동경 126° 50′ 32″], 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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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의 3대 온천인 온양온천, 도고온천, 아산온천 이야기. "물은 아름답다." 소설가 이태준의 수필에 적혀 있는 글귀이다. 이태준의 말처럼 흐르는 모양, 흐르는 소리도 아름답거니와 물에는 맑은 덕, 남의 더러움을 씻어는 줄지언정 남을 더럽힐 줄 모르는 어진 덕이 있다. 마음을 맑힐 수 있고 몸을 깨끗이 할 수 있는 물은 기쁘고 성스럽다. 여기서는 그 성스러운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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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옛길과 옛 고개의 위치와 지명 등을 수록한 자료집. 『아산의 옛길과 고개』는 온양문화원에서 ‘2015 지역 문화 특성화 사업’으로 기획·편찬한 도서로 왕의 온행길, 이순신 백의종군길, 충청수영로 등 아산의 옛길과 옛 고개의 위치와 지명 등을 수록한 자료집이다. 아산시는 예로부터 육로와 해상 교통이 발달하였지만 도시화와 산업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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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인주면, 음봉면, 염치읍, 둔포면 등에 있던 행정구역. 아산현(牙山縣)은 고려 전기 인주(仁州)였다가 1172년경(명종 2) 아주현(牙州縣)으로 개칭하고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년) 아산현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 23부(府)제로 행정구역이 재편되면서 홍주부(洪州府) 관할 아산군이 되었다가 이듬해 13도(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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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에도 위치해 1년에 3차례씩 돌림병을 막기 위해 국가에서 여러 신에게 여제를 지내던 제단. 여단(厲壇)은 돌림병을 예방하기 위해 주인 없는 외로운 혼령을 국가나 지방의 군현에서 제사를 지내주던 토석단(土石壇)을 말한다. 조선시대 아산현, 신창현, 온수현[온양군으로 승격]에는 각각 여단이 있었다. 조선 전기의 자료인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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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의 역사에 대한 개관. 충청남도 아산은 조선 초에 온양군·신창현·아산현으로 편제되어 충청도관찰사의 관할 아래에 있었다. 아산현은 고려 때 아주를 1413년(태종 13)에 개칭한 것이다. 1459년(세조 5)에 현을 줄여서 온양·평택·신창 등 세 고을에 나누어 붙였다가 1465년에 다시 복구되었으며, 1505년(연산군 11) 경기도에 이속되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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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에서 과거에 매우 번성했지만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점차 침체되었다가 정부의 농촌 지원 사업과 주민 주도의 마을 만들기 사업 등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고자 노력하는 마을들의 이야기.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는 조선시대 아산현의 관아가 있던 치소(治所)였다. 아산현은 1895년 아산군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14년에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아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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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장존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오봉사(五峰寺)는 아산시 장존동에 있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이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오봉사의 건립 경위는 사찰 관련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확인이 어렵지만, 987년(성종 6)에 건립된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으로 미루어 늦어도 고려 초기에는 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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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온양온천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한 도서. 『온궁육백년(溫宮六百年)』은 조선왕조 500년부터 일제강점기 신정관(神井館) 시절을 거쳐 현재에 이르는 온양온천 600년의 역사와 문화를 총정리한 단행본이다. 온궁 복원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온궁 자료를 찾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온양온천의 문화와 역사의 특수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문헌이 빈약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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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온수군(溫水郡)은 고려 전기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관내에 있었던 행정구역 중 하나이다. 온양온천이 있는 아산시 중심부 일대, 구 읍내 및 곡교천 남쪽 지대가 당시 온수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936년(태조 19) 9월에 후백제의 항복을 받아 통일을 완성하였다. 왕건은 통일을 완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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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립 교육기관. 온양향교(溫陽鄕校)는 조선시대부터 온양군에 있었던 관립 교육기관이며, 1997년 12월 23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15호로 지정되었다. 온양향교는 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에 있다. 통칭 ‘구온양’이라 불리는 곳으로 온양온천역 남남동쪽 직선거리 2.2㎞이다. 국도 39호선[외암로]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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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에 속하는 행정동. 온양1동(溫陽一洞)은 아산시의 중심지인 온양의 동(洞) 지역에서도 가장 중심인 온천동의 핵심 지역으로 아산시청 소재지이다. 온양1동은 온양 시가지를 동서 방향으로 관통하는 온천대로[국도 제21호선]의 북쪽 지역으로 법정동인 온천동의 절반 가까이의 면적을 차지한다. 북쪽으로는 곡교천을 건너 염치읍 석정리와 맞닿고 남쪽으로는 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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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에 속하는 행정동. 온양2동(溫陽二洞)은 온양온천역 소재지로 아산시 중심 시가지역의 남서부 지역에 해당한다. 시가지를 동서 방향으로 지나는 온천대로[국도 21호선]의 남쪽 지역으로 전체적으로 한복의 저고리를 펼쳐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 온천대로를 경계로 직선에 가깝게 북쪽의 온양1동 지역과 구분되며, 동쪽과 남쪽 대부분은 온양5동의 용화동과 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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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에 속하는 행정동. 온양3동(溫陽三洞)은 권곡동(權谷洞), 모종동(毛宗洞), 신동(新洞)의 3개 법정동으로 이루어지며, 아산시 중심 시가지의 동북부에 있는 주거단지, 농경지가 복합된 시내권의 신흥 주거지역이다. 면적 기준으로 주거 및 상업 지역과 주로 논으로 이루어진 들판이 대략 절반씩이다. 북쪽은 곡교천을 경계로 염치읍과 마주보고, 동쪽은 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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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에 속하는 행정동. 온양4동(溫陽四洞)은 실옥동(實玉里), 방축동(防築洞), 점량동(点梁洞), 득산동(得山洞), 배미동(培美洞)의 5개 법정동으로 이루어진다. 옛 온양시의 서부 지역에 해당하며, 동쪽은 아산로와 남산 줄기를 경계로 온양1동과 온양2동, 온양5동의 용화동, 신인동과 접하고, 남쪽은 온양5동의 신인동, 기산동과 맞닿아 있다. 서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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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에 속하는 행정동. 온양5동(溫陽五洞)은 용화동(龍禾洞), 신인동(信仁洞), 초사동(草沙洞), 기산동(岐山洞)의 4개 법정동으로 이루어진다. 옛 온양시의 서남부 지역에 해당하며 북쪽으로는 아산시 중심지역인 온양1동과 접하고 동쪽으로는 온양6동과 길게 맞닿아 있다. 남쪽은 황산 줄기를 기준으로 송악면과 경계를 이루고 서쪽은 남산 줄기와 황산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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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에 속하는 행정동. 온양6동(溫陽六洞)은 읍내동(邑內洞), 좌부동(左部洞), 장존동(長存洞), 법곡동(法谷洞), 풍기동(豊基洞), 남동(南洞)의 6개 법정동으로 이루어진다. 조선시대 온양의 중심지인 읍내동이 포함되어 있는 곳으로 아산시의 전통문화와 역사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설화산 산줄기를 경계로 배방읍 공수리, 신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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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온양6동의 행정 사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관. 온양6동 행정복지센터는 충청남도 아산시를 구성하는 6개 동[온양1동, 온양2동, 온양3동, 온양4동, 온양5동, 온양6동] 중 온양6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고, 지역주민에게 문화·복지·편의 시설을 제공하는 기관이다. 온양6동 행정의 능률과 주민 편의를 도모하고 가족관계 등록 및 주민등록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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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1~6동 일대와 탕정면, 배방면, 송악면 일부에 해당하는 행정구역. 온양의 온천은 옛날부터 병에 효험이 있기로 유명하였다. 특히 조선시대 수도 한양에서 200여 리[약 78.5㎞]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왕실의 일원이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자주 찾았다. 왕의 잦은 온양행은 현(縣)에 불과했던 온양이 군(郡)으로 승격되는 결정적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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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후반에 필사본으로 편찬된 온양군의 읍지. 『온양군읍지』는 18세기 아산 지역의 연혁, 지리, 인물 등을 기록한 책이다. 『온양군읍지』[18세기]는 온양군에서 편찬하였다. 18세기 중후반 영조 대에 편찬되었다. 『온양군읍지』[18세기]는 선장본이며, 필사본이다. 『온양군읍지』[18세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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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1870년 이후에 필사본으로 간행된 온양군의 읍지. 『온양군읍지』는 19세기 아산 지역의 연혁, 지리, 인물 등을 기록한 책이다. 『온양군읍지』[19세기]는 온양군에서 간행하였다. 고종 즉위 이후 흥선대원군이 군현을 정비하면서 영조 대 편찬된 읍지에 이후 변동된 사실 등을 추가하여 1860년~1870년에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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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민속 자료를 정리한 자료집. 『온양아산의 민속』은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전통문화 자료 발굴과 보존을 위해 수집된 민속 자료를 백과전서 형식으로 엮은 일종의 자료집이다. 온양문화원은 아산 지역 전통문화 자료의 발굴 및 보존 사업에 역점을 두고 꾸준히 사업을 추진해오던 중 그동안 수집된 자료를 정리할 필요성을 갖게 되었다. 이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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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 남구만이 지은 충청남도 아산현의 온양온천에 대한 기문(記文). 「온양온천북탕기(溫陽溫泉北湯記)」는 남구만(南九萬)[1629~1711]이 1660년 가을 어머니를 모시고 충청남도 아산현 온양군의 온탕에 갔다가 퇴락한 온천을 수리하고 보수한 내용에 관한 기록이다. 남구만의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 시호는 문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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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에서 발원하여 권곡동에서 곡교천으로 흘러드는 지방하천. 충청남도 온양에는 온천이 있어서 온천과 관련한 지명이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백제 때에는 탕정군(湯井郡), 고려 초에는 온수군(溫水郡), 1432년(세종 14)에는 온양군(溫陽郡)으로 불렸다. 온양군을 흐르는 하천에도 ‘온양천(溫陽川)’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1919년에 제작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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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필사본 온양군 읍지. 『온주군지』는 19세기 아산 지역의 연혁, 지리, 인물 등을 기록한 책이다. 『온주군지』는 온양군에서 간행하였다. 19세기 이전에 간행되었던 기존 온양군읍지들을 전사(轉寫)하고 내용을 추가하여 편찬하였다. 『온주군지』는 선장본이고 필사본이다. 『온주군지』는 건치 연혁, 군명, 관직,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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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관아 건물. 온주아문(溫州衙門) 및 동헌(東軒)은 백제 이래로 고을 관아가 있던 치소(治所)로,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아 건물 중 온주아문과 동헌이 현존하고 있다. 온양군이었음에도 ‘온주아문’이라 한 것은 온양의 격을 높여서 ‘온주’라 칭했던 것이며, 이는 백제 때부터 탕정군이었던 이곳 인근에서 백제 부흥 운동이 치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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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에 있는 이간을 기리는 조선 후기의 사우. 외암서사(巍巖書社)는 전부터 있었던 외암정사[외암영당(巍巖影堂)이라고도 함]의 이름을 바꾼 것으로 서원의 성격을 지니며 외암(巍巖) 이간(李柬)[1677~1727]을 기리던 사우였다.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 광덕산 북쪽 강당골계곡 초입에 있다. 국도 39호선 중 송악면 소재지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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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온양6동에 속하는 법정동. 읍내동(邑內洞)은 행정동인 온양6동의 관할을 받으며 읍내1통~읍내6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읍내동은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아가 있던 곳으로 구한말까지 온양군의 중심지였기에 ‘읍내’라 하였다. 읍내동은 본래 온양군 읍내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전리, 송전리, 동변리, 유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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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에 있으며 백제 시대로 추정되는 석축 산성. 읍내동산성(邑內洞山城)은 옛 온양군 관아 바로 뒤쪽에 솟아 있는 연산(燕山)[121.1m]의 정상부와 산의 중턱[중복(中腹)]에 걸쳐 삼태기형으로 축성되어 있는 석축 산성이다. 읍내동산성의 축조 시기와 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온조왕 36년[서기 18년]에 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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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동학 지도자. 1894년(고종 31) 10월 홍주성(洪州城)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동문 밖에서 참살당했다. 이신교(李信敎)[1840~1894]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회안대군파(懷安大君派) 17세손이다. 입향조인 13대조 이사눌(李思訥) 이후 약 400년간 세거해 온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면 용화리[지금의 아산시 용화동]에서 태어나고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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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에 있는 1870년대 온양군수 이응우의 선정비. 이응우(李膺愚)는 1871년(고종 8) 6월에 온양군수로 부임하여 3년여 동안 재임하였는데, 세수 감소 등으로 군의 재고가 부족해지자 자신의 녹봉을 내놓아 충당하였다. 이응우가 재임 중 충당한 비용이 모두 3천여 금이었다고 한다. 이응우는 온양군수직을 마치고 1874년 7월에 무주부사로 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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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의 행정구역, 인구 추이, 도시와 촌락, 산업, 교통 등의 인문 지리적 조건. 아산군은 조선시대 3개 군현[온양군, 아산현, 신창현]이 1914년 통합되어 생겨났으며, 온양온천을 배경으로 일제강점기 이후 근대적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1986년 온양시가 분리 독립하였는데, 온양시는 충청남도에서는 천안시에 이어 두 번째로 탄생된 시(市)로 온양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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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정기적으로 열렸던 시장. 충청남도 아산시는 남한의 중서부 지역에 입지해 있고, 충청남도의 북동부 아산만 연안에 면하여 있다. 아산시는 북쪽으로는 경기도 평택시, 서쪽으로는 충청남도 당진시와 예산군, 동쪽으로는 충청남도 천안시, 그리고 남쪽으로는 충청남도 공주시와 각각 접하고 있다. 아산시는 북쪽에서 아산만과 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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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 서원골에 있던 조선 후기의 사설 교육기관. 1634년(인조 12)에 창건된 정퇴서원(靜退書院)은 원래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와 퇴계(退溪) 이황(李滉)을 향사하기 위한 서원이었는데, 동포(東浦) 맹희도(孟希道)와 만전당(晩全堂) 홍가신(洪可臣)을 함께 배향하였다. 또한 1634년 정퇴서원 옆에 별도로 충효당(忠孝堂)을 지어 충무공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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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유지되던 시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역사. 충청남도 아산시는 조선시대 때에 아산현(牙山縣), 신창현(新昌縣), 온양군(溫陽郡)으로 각각 독립적인 행정구역으로 존재하였다. 그러나 이들 지역은 모두 인접 지역이었던 만큼 행정구역 설정부터 군사제도, 교통 및 통신 등 많은 영향을 서로 주고 받았다. 또한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호구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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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온양6동에 속하는 법정동. 좌부동(左部洞)은 행정동인 온양6동의 관할을 받으며 좌부1통~좌부6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좌부동은 온양군 읍내의 왼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좌부 또는 좌의비라 한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좌부동은 본래 온양군 읍내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교리, 신리, 괴화리를 병합하여 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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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충청남도 아산 지역을 포함하여 지방에 두었던 군사조직. 1457년(세조 2) 중앙에 오위(五衛) 체제를 정비하면서 지방 군사조직으로 진관(鎭管) 체제를 정비하였다. 진관 체제는 세조 이전에 있었던 군익도(軍翼道) 체제를 더욱 보완·발전시킨 것이다. 진관 체제는 지휘관이 지휘하는 곳에 주진(主鎭), 내륙 군사적 요충지에는 거진(巨鎭)을 각각 설치하고 주변 여러 고을을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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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에 속하는 법정리. 창암리(昌巖里)는 창암1리, 창암2리, 창암3리으로 이루어지며 신창면의 남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길게 자리한 마을이다. 주민들은 주로 농사를 짓고, 일부는 상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창암리’라는 명칭은 1914년 창덕리(昌德里)와 명암리(鳴巖里)를 병합할 때 두 마을의 이름을 하나씩 따서 붙인 것이다. 창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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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의 옛 온양군 지역에 대한 근대의 토지대장. 대한제국은 전국적인 양전(量田), 즉 토지를 조사·측량하기 위한 양지아문(量地衙門)[1898~1902]을 설치하여 수세에 활용할 양지아문양안(量地衙門量案)을 작성하였는데, 『충청남도온양군양안(忠淸南道溫陽郡量案)』은 1901년(광무 5)에 양지아문에서 작성한 온양군 내 9개 면에 대한 토지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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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영조 대부터 19세기 헌종 대에 걸쳐 충청도 각 읍의 읍지를 모아 펴낸 종합 읍지. 『충청도읍지』는 18~19세기 충청도 지역의 읍지를 총 51책으로 펴낸 것으로 온양군[38책], 아주현[47책], 신창현[48책]의 읍지가 수록된 충청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지(道誌)이다. 『충청도읍지』는 저자 미상으로 알 수 없다. 18세기 중반에 간행된 『여지도서(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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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구령리에 있는 들. ‘탕정(湯井)’은 ‘온천이 솟는 우물’을 일컫는다. 백제 때에는 온양을 탕정(湯井)이라 불렀고, 신라에 편입된 뒤 671년(문무왕 11)에는 탕정주(湯井州)라 불렀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온수군(溫水郡)으로 고쳐 불렀다. 조선 초기에 온양과 신창을 합쳐 온창(溫昌)이라고 부른 적도 있지만, 조선시대인 1442년 세종이 온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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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탕정군(湯井郡)은 백제시대 아산 지역을 관할하기 위해 설치한 행정조직이다. 아산 지역이 탕정군으로 편제된 시기는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지만, 사비기(泗沘期)에 지방통치조직으로 방군성제(方郡城制)가 실시되었으므로 이때 탕정군으로 편제되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영현(領縣)으로 아술현(牙述縣)과 굴직현(屈直縣)을 두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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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초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인 671년(문무왕 11) 탕정군(湯井郡)을 탕정주(湯井州)로 승격시켜 총관(摠管)을 임명하였다가 681년(신문왕 1) 다시 탕정군으로 격하시켜 웅주(熊州)에 예속시켰다. 통일신라는 685년(신문왕 5)에 이르러 지방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9주5소경제(九州五小京制)로 정비하였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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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에서 공공 문제의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 분배와 관련된 지방자치단체의 제반 활동과 상호작용 과정. 행정의 수행은 정치 권력을 배경으로 하지만 공공 서비스의 생산 및 공급은 정부가 독점하지 않는다. 즉, 준정부기관 및 민간 부문과의 상호작용 및 협력적 관계를 통해 공공 서비스를 생산, 공급, 분배한다. 넓은 의미의 정부는 국가 통치기구를 의미하며 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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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지역에 있는 인재 양성과 유교 이념 보급을 위해 설립된 조선시대의 관립 교육기관. 향교는 고려 중기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유학 교육을 위해 지방에 설립된 관립 교육기관이다. 충청남도 아산에는 조선시대에 향교가 설립되어 인재 양성과 유교 이념 확산, 백성 교화 등의 기능을 담당하며 조선 초기 성리학 보급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주(州), 부(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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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회룡리 마을에서 용과 관련해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회룡리 전설」은 하늘에서 잘못을 저지른 용이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회룡리 마을로 내려와 수호신으로 마을을 지키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이다. 「회룡리 전설」은 1992년 이경미, 송재금이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회룡리 마을로 현지 조사를 나가 채록한 것을 바탕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