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620
한자 牙山邑內洞幢竿支柱
영어공식명칭 Flagpole Supports in Eupnae-dong, Asan
이칭/별칭 읍내동 당간지주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 255-5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조원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고려시대 -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 조성
문화재 지정 일시 1971년 7월 7일연표보기 -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 보물 제537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 보물 재지정
현 소재지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 - 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 255-5 지도보기
성격 당간지주
재질 화강석
크기(높이) 높이 350㎝
소유자 국유
관리자 아산시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에 있는 고려시대 당간을 걸어두기 위하여 세운 기둥.

[개설]

당간지주는 규모가 큰 사찰의 입구 맨 앞에 세워졌던 불교 유적이다. 당(幢)은 농악에 쓰는 농기(農旗) 비슷하게 길게 늘어뜨린 형태의 깃발이며 사찰에 법회 등 행사가 있을 때 거는 불교 용구이다. 이 당을 높이 매다는 긴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고, 당간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지지하기 위해 만든 한 쌍의 긴 돌기둥이 당간지주(幢竿支柱)이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는 1971년 7월 7일 보물 제537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는 고려시대에 조성되었으며 현재의 위치에 원래부터 그대로 있었다. 당간지주 주변에서 과거에 기와조각과 석탑재가 발견된 바 있어 인근에 고려시대의 절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위치]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아산시 읍내동 255-5에 자리한다. 온양온천역에서 남남동쪽 직선거리 2.4㎞ 남짓한 지점이며, 속칭 ‘구온양’이라 하는 곳이다. 서쪽 인근에 국도 39호선, 북쪽에 마을길[온주길]이 개설되어 있다.

[형태]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는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긴 돌기둥 두 개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태이다. 높이는 350㎝, 맨 아래의 너비는 58~59㎝, 두께 43㎝이며 두 지주 사이는 약 85㎝이다. 당간지주 위와 아래의 너비와 두께가 큰 차이가 없어서 당당한 느낌이며 바깥 면의 양 모서리를 깎아 모 죽임을 하였다. 당간지주의 정상부는 바깥을 향해 호형으로 부드럽게 깎아 놓았으며 기둥 중간에 간공[구멍]은 없다. 정상부에만 안쪽에 간구, 즉 나무를 끼워 당간을 고정하기 위한 홈이 각각 하나씩 만들어져 있는데 간구 아랫부분은 둥글게 처리하였다.

두 지주 사이에는 당간을 받치는 간대[당간받침]가 놓여 있다. 간대는 자연석 윗부분을 둥글게 다듬고 가운데가 복발(覆鉢)처럼 볼록 솟아 있어서 전립(戰笠, 氈笠) 또는 벙거지 비슷한 형태이다. 이러한 간대의 모습으로 보아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 사이에는 철 당간을 세워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간지주와 간대는 대개 기단석 위에 조성되나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에서는 이러한 기단석을 볼 수 없다. 기단석이 있을 부분까지 흙으로 덮여 있고, 기단석이 유실된 것인지의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현황]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는 당간지주와 간대(竿臺)만 남아 있으며 당은 물론이고 당간도 남아 있지 않다. 오른쪽 당간지주의 바깥쪽 윗부분 일부가 간구까지 깨져 있다. 당간지주의 주변으로는 석축의 옹벽과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당간지주가 낮은 곳에 서 있는 상황인데 이는 도로와 주변 부지가 지속적으로 돋우어졌기 때문이다. 최근에 다시 한번 주변이 정비되었고 남쪽에 정자도 마련되었다.

[의의와 평가]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는 아산 지역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당간지주이다. 특별한 조각 등이 없어서 화려하지 않지만 엄정하면서도 단아한 느낌을 준다. 비록 당간과 기단석을 볼 순 없지만 이 존재만으로도 고려시대의 큰 사찰이 주변에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읍내동은 1913년까지 조선시대 온양군 등 백제 탕정군 이래로 고을 관아가 있던 치소였다. 고려시대까지는 관아 인근에 사찰이 위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당간지주 주변에 기와조각이 많이 있었고 석탑 부재도 확인되며 연못[연당]의 석축 흔적이 남아 있었다. 또한 온양향교 동남쪽 밭에 석탑이 서 있었다는 이야기 등으로 보아 당간지주 북쪽에 고려시대의 큰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찰명을 비롯해서 구체적으로 확인되는 사항이 전혀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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