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흔적이 넘실대는 아산의 젖줄 곡교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1393
한자 -痕跡-牙山-曲橋川
영어공식명칭 Gokgyocheon which is Asan’s Lifeline Full of Human History
이칭/별칭 포천(布川),포천(浦川),봉화천(熢火川),차륜탄(車輪灘),견포(犬浦),대포(大浦),봉호천(熢湖川),봉강천(熢江川),미륵천(彌勒川)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경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530년 - 곡교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757년~1765년 - 곡교천 『여지도서』에 관련 내용 기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8년 - 실옥보 준공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9년 - 삽교천방조제 준공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4년 - 실옥보 개수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1년 - 2차선 다리에서 4차선 다리로 충무교 준공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9년 - 아산대교 준공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의 젖줄로 일컫는 아산의 중심 하천.

[개설]

충청남도 아산시의 중앙을 가로질러 흐르는 곡교천(曲橋川)은 총 33개의 지천을 거느린 하천으로, 그 주변에서 농경 산업과 공업 등이 발달하였다. 곡교천의 곳곳에서 과거와 현재 아산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곡교천 소개]

곡교천은 충청남도 아산시를 대략 남동에서 북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주요 하천으로, 33개 지천의 물이 곡교천으로 모인다. 충청남도 천안시와 공주시, 세종특별자치시가 만나는 국사봉 북쪽에서 발원하여 천안시와 세종시, 다시 천안시를 거쳐 아산시 지역으로 접어든다. 아산시 지역을 흐르며, 아산만으로 이르는 곳곳에 들판을 형성하였고 여러 곳에 나루와 포구가 발달하여 아산 사람들의 삶에 직접, 간접으로 큰 영향을 준 하천이다.

[고분다리내, 곡교천의 이름 이야기]

아산을 가로질러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곡교천은 천안천, 온양천 등 모두 33개의 지천을 거느린 하천이다. 하천연장 45.48㎞, 유로 연장 49.18㎞, 유역 면적 545.08㎢로 곡교천의 주요 지천인 온양천 합류점을 기준으로 상류의 지방하천과 하류의 국가하천으로 나뉜다. 곡교천은 시대와 지역, 구간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곡교천과 관련해 가장 오래된 자료인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서도 「온양군지」에는 ‘포천(布川)’, 「아산현지」에는 ‘봉화천(熢火川)’, 「신창현지」에는 ‘차륜탄(車輪灘)’으로 기록되어 었다.

이 외에도 포천(浦川), 견포(犬浦), 대포(大浦), 봉호천(熢湖川), 봉강천(熢江川), 미륵천(彌勒川) 등 다양한 이름이 있었다. ‘포천[布川, 浦川]’의 유래는 곡교천 하구의 포구인 견포(犬浦)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추정한다. ‘견포’는 곡교천 하구 일대를 기준으로 한 이름이다.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을 뜻하는 우리말 ‘개’에서 비롯되어 한자 견(犬)으로 표기하였고, 우리말 ‘개’의 한자 포(浦)는 중복이며 동시에 포구를 뜻한다.

조선시대에 하구 근처에 있는 주요 포구의 이름으로 하천 이름을 대신하였던 경우가 많았으니, 견포는 포구 이름이며 동시에 하천 이름이었다. 대포(大浦)는 견포의 ‘견(犬)’이 좋은 글자가 아니어서 ‘대포’로 바꿔 부른 것으로 보고 있다. 봉화천 혹은 봉강천은 봉수대와 관련된 이름이다. 곡교천의 발원지인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원덕리 쇠내골 서쪽에 쌍령산 봉수대가 있고 쌍령산 봉수를 받는 태학산 봉수가 곡교천이 풍세·배방에 이르는 구간에서 훤히 보이기 때문에 현재도 이 구간의 곡교천을 ‘봉강천’이라고 부르고 있다.

미륵천은 곡교천의 중하류 지역을 일컫는 명칭으로 이 일대 번성했던 미륵신앙과 관련이 있으며, 특히 곡교천 하구에 서 있던[현재 인근 대윤사에 있음] 미륵불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보면 곡교천을 따라 하류에서부터 견포, 중방포, 곡교, 미륵천, 봉천, 포천이 차례로 기록되어 있다.

‘곡교천’이라는 명칭은 조선 후기 영조 대의 『여지도서』「아산현지」에 봉화천을 기록하면서 "일명 ‘곡교천’이라 한다"는 기록이 최초이다. ‘곡교천’이라는 이름의 ‘곡교(曲橋)’는 고분다리에서 유래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신창현 교량으로 미륵탄교(彌勒灘橋)가 기록되어 있어서 고분다리 인근에 조선 전기에도 다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주요 교통로 중 하나였던 충청수영로가 염치에서 곡교천을 건너 신창면 읍내리를 지나 충청남도 예산 신례원으로 이어졌었다. 이 도로의 주요 교량으로 염치읍 곡교리신창면 수장리 사이에 놓인 다리가 고분다리이다.

고분다리는 조수의 흐름을 따라 드나드는 선박을 방해하지 않도록 갯물[조수]을 이용할 수 있는 최종 지점에 설치되었다. 상인과 주민은 물론 충청수영로를 따라 이동하는 관리와 사신도 이용하는 다리인 만큼 웬만한 홍수기에는 잠기거나 떠내려가지 않을 정도의 굵은 나무를 이용해 놓은 섶다리다. 그 형태가 무지개처럼 둥글게 굽어 다리를 ‘고분다리’, 하천을 ‘고분다리내’라고 하였는데, 한자어로 ‘곡교’, ‘곡교천’이라고 했다. 곡교천의 상류와 하류, 본류와 지류, 뱃길과 육로를 연결하는 포구와 나루는 아산의 다채로운 역사와 문화의 씨줄 날줄 역할을 하고 있다.

[금북정맥의 북쪽, 삽교천 수계의 곡교천]

충청남도의 수계(水系)는 대체로 차령(車嶺)[190m] 남쪽의 금강 수계와 북쪽의 삽교천 수계로 양분된다. 금강 수계의 북쪽 경계를 이르는 말이 곧 금북정맥(錦北正脈)이므로 삽교천 수계는 금북정맥의 북쪽에 해당한다. 삽교천 수계에는 무한천, 삽교천, 곡교천 등 크게 세 개의 하천이 있다. 아산만의 삽교호방조제를 기준으로 세 하천의 유로 연장, 즉 하천의 길이는 무한천이 69.2㎞로 가장 길고, 삽교천이 58.6㎞, 곡교천이 54.48㎞이다. 가장 긴 무한천이 수리수문학적으로는 삽교천 수계의 본류이고, 곡교천삽교천은 지류에 해당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래 관행적으로 삽교천을 본류로 취급했기 때문에 곡교천삽교천에 합류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삽교천 합류점을 기준으로 곡교천의 공식적인 유로 연장은 49.18㎞이다.

곡교천의 발원지는 행정구역상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원덕리의 쇠내골이다. 이곳은 천안시, 공주시, 세종시의 경계를 이루는 국사봉[402.7m]의 북쪽 골짜기이다. 쇠내골에서 시작한 곡교천은 세종시 전의면·소정면을 지나 천안 풍세면을 거쳐 아산시 배방읍으로 들어온 뒤부터는 계속해서 아산시 지역의 한가운데를 북서 방향으로 가로질러 흐르다가 삽교호에 이른다. 이 경로를 거치는 동안 33개의 지천이 곡교천으로 합류하며, 곡교천의 유역 면적은 545.1㎢가 된다.

다른 하천 유역과의 경계를 ‘분수계(分水界)’라 하는데, 대개 산줄기의 능선이나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곡교천 유역의 분수계도 대부분 산 능선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산줄기 체계인 산경표를 기준으로 하면 곡교천 유역의 동쪽과 남쪽 경계[분수계]는 금강 수계의 북쪽 경계인 금북정맥과 일치한다. 북쪽 경계는 영인지맥에 해당하며, 서쪽 경계는 지역 등산객들이 이름 지은 ‘봉수단맥’을 따라간다.

곡교천 유역의 동쪽 분수계는 금북정맥 중 천안 성거산[591.1m] 남서쪽의 갈마고개 부근부터 시작한다. 갈마고개에서 금북정맥의 남쪽 방향으로 천안의 태조산[422m], 취암산[319.9m], 고려산[307.2m]을 거친 뒤 천안·공주·세종의 경계가 되는 국사봉에 이른다. 여기서 북서 방향으로 크게 바꿔 차령에 이른 뒤 광덕산 남쪽의 갈재와 각흘고개를 지나 봉수산[535.2m] 정상의 남쪽 200m까지가 곡교천의 남쪽 경계가 된다. 금북정맥은 이 부분에서 남쪽으로 꺾어 천방산[478.9m]으로 향하지만, 곡교천 유역의 경계는 북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봉수단맥을 따라간다. 여기부터는 곡교천의 서쪽 경계로 무한천 유역과의 분수계가 된다.

곡교천의 서쪽 경계는 봉수산 정상에서 오형제 고개를 지나 곽씨봉[245.3m]으로 향한다. 곽씨봉은 아산시 송악면도고면, 예산군 대술면 등 3개 면의 분기점이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바람골산을 지나 덕암산[260.5m]에 이른 뒤 신창휴게소가 있는 한티[한치고개]를 지나 도고면 삼봉산[140.2m]에 이른다. 삼봉산부터는 북북서 방향으로 구릉을 따라가다가 삽교천에 맞닿은 선장면 신문리에 이르러 그 경계가 마무리된다.

곡교천의 북쪽 경계인 영인지맥은 곡교천 유역과 안성천 유역의 분수계 역할을 한다. 영인지맥은 동서 방향으로 직선거리 32㎞가 넘지만, 큰 산보다는 낮은 구릉이 많다. 성거산 갈마고개 북동쪽 400m 지점의 갈매봉이 영인지맥의 시작점이다.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이어지며, 천안 안서동과 성거읍의 경계를 따라가다.

천호지 북쪽 큰매산[142.2m]을 지나 두정동 아파트 단지를 거쳐 두정고등학교 옆의 노태산[141m]으로 향한다. 이 지역의 높이는 평균 60m대이며 택지개발로 돋우고 메워진 지역이라 분수계를 확인하기 쉽지 않다. 노태산에서 번영로를 가로질러 천안 제3산업단지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꺾은 후 천안 제2산업단지 북쪽 대림아파트에서 다시 서쪽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미륵산[189m], 용와산[238.4m]에서 솟아오른다. 계속 서쪽으로 이어지며, 봉수대가 있던 연암산[292.7m]을 지나 둔덕산[225m], 국사봉[222.8m], 금산[263.1m] 줄기로 뻗다가 남쪽으로 내려와서 아산온천 동쪽 배티고개와 아산리 삼거리가 있는 돌목이고개를 지나 영인산[363.5m]에서 마지막으로 솟구쳤다가 인주면 한가운데로 뻗어내려 대음리에서 마무리된다.

[33색, 곡교천의 지천과 뜰]

곡교천의 지천은 온양천, 천안천 등 모두 33개이며, 지천 중 24개 하천은 아산시에, 7개 하천은 천안시 지역에, 2개 하천은 세종시에 속한다. 이 중 아산시 지역에서 곡교천으로 직접 흘러드는 제1지류는 상류 쪽부터 회룡천, 천안천, 매곡천, 용두천, 온양천, 오목천, 음봉천, 와천, 신창천, 학성천 등 모두 10개의 지천이 있다. 곡교천의 발원지인 광덕면 원리에서부터 온양천 합류 지점까지는 지방하천, 그 이후부터 하구까지는 국가하천으로 지정되어 있다. 지천은 저마다 다른 색깔의 이야기를 담고 곡교천으로 흘러든다.

곡교천의 본류는 금북정맥에서 시작해 아산만을 향해 서북서 방향으로 흐른다. 금북정맥과 엇비슷하게 뻗은 차령산맥 산지가 북북동-남남서 방향으로 발달한 우리나라의 기본 구조선을 따르지만, 곡교천의 본류는 이 1차 기본 구조선의 수직 방향으로 발달한 2차 구조선을 따라 흐른다. 곡교천 일대의 지질도를 보면 전체적으로 선캄브리아기의 편마암 지역에 1·2차 구조선을 따라 중생대에 관입한 화강암 지대가 나타난다. 곡교천 본류는 비교적 풍화에 약한 화강암 지대를 따라 넓게 발달한 충적층 위를 흐르며, 곡교천의 분수계인 금북정맥·영인지맥의 대부분은 풍화에 강한 편마암 산지에 해당한다.

곡교천의 지류는 대개 1·2차 구조선을 따라 직교상 내지 수지상 수계를 형성하는데, 발원지의 기반암에 따라 하천의 유량이나 퇴적물의 성격이 다르다. 일례로 비에 쉽게 씻기는 모래땅이 많은 화강암 지대를 지나오는 천안천은 폭우가 내리면 홍수가 나는 경우가 꽤 많고 곳곳에 모래톱을 만든다. 반면에 편마암 산지 지대에서 발원해 흘러오는 풍서천과 온양천은 그렇지가 않다. 생태적 잠재력이 큰 편마암 산지는 식생이 잘 발달하고 보수력이 좋아 홍수와 가뭄 피해가 적고 흰 모래톱을 보기 어려운 것이다.

아산시의 곡교천 구간에서 가장 먼저 합류하는 지천은 회룡천이다. 배방읍 동남쪽의 태학산[455.5m] 북쪽 골짜기 호서대학교 내에 있는 세나리 소류지에서 시작한 회룡천은 북동 방향으로 흘러 회룡리 마을 앞을 지나 갈매리북수리 사이에서 곡교천에 합류한다. 회룡천 합류 지점에서 북쪽으로 약 700m 내려가면 동쪽에서 흘러오는 천안천과 만나는데, 두 하천의 범람으로 형성된 들판이 신농씨들이다. 예전에는 주로 논으로 이용되었으나, 최근에는 풍부한 지하수와 비옥한 토질을 바탕으로 채소, 원예작물을 사시사철 재배하고 있어 근교 농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천안천 합류 이후 음봉면탕정면을 거쳐오는 매곡천용두천이, 송악면읍내동을 거쳐오는 온양천곡교천으로 모여들어 아산 제일의 곡창지대인 탕정평야를 이룬다. 탕정평야는 대부분 논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갈산리 일대에는 포도밭이 조성되어 8월이면 곡교천 자전거 도로를 달릴 때 달콤한 포도 향을 맡을 수 있다. 탕정평야에 제방과 수로가 정비되기 전의 곡교천은 여러 하천의 합류로 퇴적과 측방 침식작용이 강해짐에 따라 자유롭게 곡류하며 자연제방, 배후습지, 우각호, 하중도, 구하도를 형성하였다. 오늘날의 곡교천은 대체로 직강화되어 자연제방은 인공제방으로, 배후습지는 농경지로 바뀌어 그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배방읍 구령리탕정면 용두리 사이에 예전의 곡교천 물길을 따라 구획한 행정구역 경계를 통해 굽이치던 곡교천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탕정평야를 지나는 온양천은 조선시대 온양군의 중심을 흐르는 하천인 만큼 곡교천의 아산 지역 지천 중 가장 길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하천이다. 송악저수지를 이루는 유곡천·마곡천·약봉천, 광덕산 강당골외암마을 앞을 지나는 외암천, 이순신백의종군길넙티고개에서 시작해 일제강점기의 금광 터가 있는 중리를 지나 맹사성 고택의 구괴정 앞 들판을 돌아나가는 금곡천 등 수많은 삶의 흔적을 담은 지천이 온양천을 통해 곡교천으로 흘러들고 있다.

온천천은 온양 시가지 중심을 흐르는 하천으로, 조선시대에 ‘온정지수(溫井之水)’라고도 했다. 용화동 매봉재 가재골에서 시작한 실개천과 홍거리마을 산에서 발원해 온양행궁[현재 온양관광호텔] 서남쪽 담을 끼고 돌아오는 실개천이 합류해 곡교천으로 흘러든다. 온양행궁이 일본인들에게 강탈당해 온양관을 거쳐 신정관이라는 온천장으로 바뀌고 그 일대에 유흥업소가 들어오는 것을 묵묵히 지켜봤던 온천천은 도시화의 과정에서 복개되었다가 2015년 일부 구간이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다. 애초에 ‘청계천+20프로젝트’에 따른 사업이었기에 청계천과 마찬가지로 곡교천의 물을 끌어 올려 인위적으로 흐르는 하천이 되었지만, 침체한 원도심의 유흥지가 시민의 휴식처로 바뀐 것에는 의미가 있다. 또 2018년 기준 일명 장미마을로 불렸던 온천천 일대 유흥업소들을 철거하고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지원사업과 더불어 청년창업과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온천천이 곡교천과의 합류 지점인 실옥리에는 용수료 징수를 목적으로 일제강점기에 개축한 실옥보[洑]가 있다. 곡교천을 가로질러 설치한 실옥보는 식량 수탈의 상징이었으며, 한동안 온양 시내와 염치를 연결하는 교통로 역할을 하였다. 1984년과 2011년의 개수공사로 실옥보의 형태는 많이 바뀌었지만, 온천천 합류 지점 부근에 수문과 수로가 남아 있다. 근래에는 곡교천에 설치된 보를 ‘옥정보’라 부르고, 온천천에 설치되었던 보만을 ‘실옥보’라 부른다. 2018년 현재 실옥보 일대는 생태습지 조성사업이 완료되어 온천천 복원구간과 연결을 앞두고 있다.

아산 시가지의 서쪽 지역에서 북으로 흘러 신정호[마산저수지]를 이루고 거문들, 늘벌 등 하류 곳곳의 들판을 적시며 곡교천으로 흘러드는 지천은 오목천이다. 오목천의 상류 지천인 초사천과 황산천 주변에는 경찰교육원과 경찰대학이 들어섰으며 오목천 하구에는 생활폐기물과 하수를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는 아산환경과학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곡교천 지천 중 최근에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곳이다.

오목천 다음으로 곡교천에 합류하는 하천은 음봉천이다. 음봉천이충무공 묘소아산온천을 감싸고 있는 금산[286.1m] 남쪽 골짜기에서 발원에 염치저수지[가혜저수지]를 이룬 뒤 석정평야 서쪽 들판을 적셔주는 하천이다. 염치저수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음봉천을 따라 곡교천고분다리를 건너 신창으로 가는 조선시대 충청수영로, 근대 이후 신작로와 국도가 지나기도 했다.

곡교천 막바지에서 흘러드는 하천은 와천, 신창천, 학성천이 있다. 이 세 하천이 차례로 흘러드는 곳에 형성된 들판이 구평리들, 구창들, 배다리들, 청심물들 등이 있다. 삽교천방조제와 곡교천 제방이 축조되기 전에는 만조 시 바닷물의 영향으로 염해를 입기도 했고 홍수도 잦았다. 그만큼 고단한 간척의 역사가 남아 있는 곳이고, 한편으로 소금 배, 새우젓 배가 들어와 포구 기능을 했던 곳이다.

[소통과 교류의 장, 곡교천의 포구와 나루]

충청남도 아산 지역은 예당평야를 포함하고 있는 내포 지방의 관문으로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도보로 이동하던 시절 한양에서 충청도 수군절도영이 있는 보령에 이르는 최단 경로인 충청수영로가 아산을 지나 예산을 거쳐 갔으며, 아산만 뱃길을 통해 어선과 조운선·여객선이 아산은 물론 합덕·예산·삽교까지 들어갔다. 근대 이전 시기에 무거운 짐이나 많은 양의 물품을 운송할 때는 대부분 배를 이용하였다. 세금으로 걷은 곡식이나 소금, 새우젓, 항아리, 석재는 물론 사람의 이동 역시 배가 담당하였다.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곡교천은 수량이 넉넉하지 않고 갯벌로 인해 해상 및 수상교통의 발달이 빠른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8.6m에 이르는 아산만의 조차로 인해 갯물[바닷물]이 드나드는 밀썰물 하천이었던 곡교천은 최고 초속 6.3m에 이르는 조류의 흐름을 이용해 내륙 깊숙이 선박이 운항할 수 있었다. 더불어 ‘없는 고기가 없었다’고 할 만큼 수산자원이 풍부하고, 조선 후기부터 간석지[개펄]가 곡창지대로 간척되어 풍족한 물산을 내놓았기 때문에 철도가 등장한 후에도 한동안 아산만의 나루와 포구로 물자와 사람은 몰려들었다.

곡교천 일대에 바다에서 들어온 배가 닿았다고 확인된 곳은 모두 17곳이 넘는다. 그중 곡교천 본류에는 하류부터 방아개나루, 새나루, 게바위나루, 여무시나루, 강척나루, 가얘나루[가야포], 중방포, 장구포, 고분다리나루 등이 있었다.

나루는 사전적으로 ‘강이나 좁은 바다를 건너는 곳’으로, 포는 ‘먼 곳에서 온 배에서 물자를 싣고 내리는 바닷가’이지만, 곡교천 유역에서는 큰 차이 없이 사용하고 있다. 배턱거리는 배를 대는 곳 정도의 사투리이다. 곡교천에서 갯물이 드나들던 최대 범위인 삽교천 합류 지점부터 약 15㎞ 안쪽[현재 아산환경과학공원 부근]까지는 배로 물자를 싣고 내리는 ‘나루’와 ‘포’가 일정 간격으로 있었다. 그 상류의 아래배턱거리, 위배턱거리 등 배턱거리 두 곳은 그저 물을 건너는 데 목적이 있는 작은 나루였다.

곡교천의 포구와 나루 중에서도 기능면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고분다리 포구’이다. 갯물의 흐름을 이용해 배가 들어와 해산물과 곡교천의 쌀을 교역할 수 있는 최종 지점이며, 한양과 충청 수군절도영을 연결하는 충청수영로와 옛 아산군 읍치[현 영인면 아산리]에서 온양군으로 향하는 도로의 교차 지점으로, 교역에 매우 유리한 곳이기 때문이다. ‘곡교천’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준 고분다리의 북쪽 곡교리에는 곡교점[주막], 곡교장 등이 있었고, 고분다리 남쪽에는 아산에서 뱃사람이 제일 많았다고 하던 수장리배미동이 있다. 배미동 북쪽 자락에는 고분다리곡교리 길목을 지켜보는 미륵불이 있는데, 마을과 뱃사람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였다.

고분다리 포구에서 하류로 내려가면 중방포, 가얘나루, 해암진[긔애나루, 게바위나루]이 있다. 중방포와 해암진은 지리지가 아닌 『난중일기』에서도 그 기록을 찾을 수 있다. 1597년 음력 4월 초에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위해 남행길에 올랐다가 어머님을 기다리며 백암리 집에 머물 때 여수에서 뱃길로 올라오시던 어머님이 태안 인근 바다의 배에서 돌아가셨다. 이순신은 4월 13일에 인주 해암리 긔애나루에서 어머님 유해를 맞이하고 입관을 마친 뒤 4월 16일에 중방포로 배를 끌어와 대어놓고 관을 현충사의 고택까지 육로로 운구하였다. 중방포가 있던 중방리는 현재 곡교천 본류에서 직선거리 500m 이상 떨어져 있는데, 곡교천의 직강화 이전인 1960년대와 1919년 지도를 살펴보면 수심이 깊어 정박이 유리한 곡교천의 공격사면이 중방리 마을 쪽과 가까웠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곡교천의 유로 변경으로 시대별로 포구의 위치는 조금씩 변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주면 해암리곡교천 건너 선장면 홍곳리 새나루, 신창면 신곡리 여무시나루를 연결했던 해암진[긔애나루]은 게바위나루라고도 한다. ‘게바위’는 해암리(海巖里)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되기도 한다. 『난중일기』『신정아주지』에 ‘게 해(蟹)’ 자를 써서 ‘蟹巖(해암)’이라고 했던 것을 해(蟹) 자가 복잡해서 이후 바다 해(海)로 바꿔 썼기 때문이다. 게 혹은 긔애라는 말은 우리말 ‘개’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게바위나루의 위치를 주민마다 다르게 증언하고는 있지만, 1986년 아산군수가 ‘게바위’ 표석을 세워 놓은 해암리 197-2에서 최근 들어 매년 이충무공 어머니[초계변씨]의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중방포와 해암진 중간쯤에 있는 가얘나루신창면 가덕리에 있던 포구로, 곡교천 일대의 여러 포구 중 지금까지도 그 흔적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가얘나루터에는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배의 정박을 위한 선창[부두] 겸 제방 역할을 하는 둑이 곡교천 가운데 방향으로 길게 드러나 있다. 주변에 석재를 구할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먼 곳에서 돌을 운반해서 공들여 쌓은 제방으로, 『조선지지자료』[1911]에 우리말로 ‘돌팡고지’로 기록되어 있다. 돌의 지역 말인 돌팍에서 유래하였으니,돌무더기 곶이라고 할 수 있다. 부두시설과 함께 배 부리는 사람들이 위하던 신을 위한 당집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매년 음력 정월 보름 안에 당제를 지내고 있다.

조선 후기부터 곡교천 인근에서 간척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근대에 들어 철도와 도로 교통이 발달하고 다리가 놓이면서 나루는 활기를 잃어갔다. 1979년 삽교천방조제로 바닷길이 막힌 후 포구로 더 이상 소금 배와 새우젓 배가 들어오지 못하고 곡교천 제방 축조 후 갯고랑이 농수로로 바뀌면서 나루와 포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나루와 포구는 옛사람들의 삶의 한 부분, 역사의 한 부분이며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 성장하고 있는 아산시의 정체성을 이루어 온 중요한 요소이다.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소통하는 생태하천 곡교천]

자연 하천으로서의 곡교천은 홍수와 퇴적으로 평야를 넓히고 끊임없는 물길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곡교천 물길을 이용하고 거스르며 수많은 삶의 흔적을 남겨왔다. 이런 곡교천의 가장 큰 변화는 1979년에 마무리된 삽교호방조제 축조였다. 방조제 축조와 삽교호 조성은 농업용수 확보와 홍수 조절 및 염수해 방지에 큰 효과를 가져왔다. 그 반대급부로 바닷물 유입의 차단은 갯벌이나 어종과 관련한 생태계에 변화가 나타났다. 과거에는 배를 타고 나가 숭어, 강달이, 농어, 서대기까지도 잡았으나, 현재는 민물 어종인 붕어, 베스, 잉어, 가물치 등이 주로 잡히고 있다.

바다와 단절되면서 오랜 역사 시대에 걸쳐 중요한 이동 및 운송 수단이었던 배의 이용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배가 닿던 곡교천 양안에는 제방이 축조되고 갯고랑이었던 지류와 본류의 합류 지점에는 수문과 양수·배수 시설이 설치되었다. 나루를 대신해 선인대교, 강청교, 맹사성교, 아산대교, 충무대교, 탕정교, 한내대교, 갈산교, 봉강교, 남관교 등 많은 교량이 가설되어 사람들은 곡교천을 쉽게 지나쳐가며 일상과 멀어졌다.

2009년부터 아산시는 ‘곡교천 생태하천 조성사업’을 추진해 곡교천을 친환경 문화체험 공간으로 조성해 나가고 있다. 곡교천의 국가하천 구간인 신동 온양천 합류 지점부터 염치읍 중방리 와천 합류 지점의 둔치에 하천 생태계 및 생물 서식 환경 복원을 위해 갈대밭을 조성하는 자연생태복원지구를 추진했다. 18세기에 보가 축조되었고 일제강점기에 개축해 하류 일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차가 다니는 교통로로도 이용되었던 실옥보는 수문이 단 두 개로, 곡교천의 유량을 효과적으로 조절하지 못했었다. 2011년부터 기존의 콘크리트 보를 철거하고 바로 아래 지점에 유량 조절이 용이한 가동보로 변경하였으며, 보 끝에 어도를 설치했다. 이와 함께 축구장, 야구장, 파크골프장, 자전거도로, 잠수교 4개소, 곡교천야영장이 개장해 하천과 함께 걸으며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아산환경과학공원 옆의 잠수교는 과거 고분다리의 위치와 거의 비슷해 곡교천의 명칭과 과거 갯물을 따라 소금 배, 새우젓 배들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곳이다. 곡교천 둔치와 더불어 곡교천의 제방, ‘전국의 아름다운 10대 가로수길’로 선정된 은행나무길의 변화도 주목된다. 은행나무길현충사 성역화 사업 당시 1973년 충무교부터 현충사 진입로에 이르는 2.2㎞ 길이의 도로에 은행나무 350여 그루를 옮겨 심은 뒤 지금은 아산의 명소로 자리 잡은 곳이다. 2013년부터는 ‘차 없는 길’로 바뀌었으며, 2015년에는 아산문화재단이 옛 산림조합 건물을 리모델링한 후 입주해 ‘은행나무길 명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산문화재단이 입주한 아산문화예술공작소의 1층 광장카페에서는 식음료와 지역 농산물·특산물 및 기념품 판매, 실내외 공연, 인문학 강좌, 소규모 모임이 가능한 문화사랑방으로 이용되고 있다. 더불어 미니도서관, 놀이 공간, 생태공예 등 문화교육 공간으로 활용되는 ‘아장아장 책 놀이터’도 있어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 및 관람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 기능을 하고 있다.

2009년부터 시작한 곡교천 하천 정비는 2018년 현재 진행 중이다. 온천천·온양천과 더불어 매곡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이 추진 중이며, 곡교천 하류인 강청·인주지구의 하천 정비사업도 진행 중이다. 사업 진행 중에 시민과 시, 국토관리청 간에 갈등도 있었다. 하천 둔치를 정비하면서 사료 작물용 밀이 재배되던 밀밭을 시에서 갈아엎어 시민과 마찰을 빚기도 했으며, 은행나무길에서 열리는 플리마켓 운영을 둘러싸고 갈등이 있었다. 강청·인주지구의 경우 2020년까지 홍수 예방을 위한 하도 정비와 초지 조성, 자전거도로, 샛강형 수로 설치를 위해 지난 2016년부터 농민들에게 5년마다 갱신하던 하천 점용·사용 기간을 연장하지 않기로 일방적으로 결정함에 따라 200여 명의 농민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곡교천은 앞으로도 아산 시민들의 삶을 풍족하고 아름답게 해주는 젖줄의 역할을 할 것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