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969
한자 巍巖書社
영어공식명칭 Oeam Seosa
이칭/별칭 관선재,외암정사,외암서원,외암영당,강당사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당로 300[강당리 32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여송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07년연표보기 - 외암정사 건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765년 - 외암서사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816년연표보기 - 외암정사에서 외암서사로 개칭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68년 - 외암서사를 강당사로 개칭하고 절로 바꿈
현 소재지 외암서사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당로 300[강당리 320]지도보기
성격 사우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에 있는 이간을 기리는 조선 후기의 사우.

[개설]

외암서사(巍巖書社)는 전부터 있었던 외암정사[외암영당(巍巖影堂)이라고도 함]의 이름을 바꾼 것으로 서원의 성격을 지니며 외암(巍巖) 이간(李柬)[1677~1727]을 기리던 사우였다.

[위치]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 광덕산 북쪽 강당골계곡 초입에 있다. 국도 39호선 중 송악면 소재지 남쪽의 외암삼거리에서 남쪽의 강당로로 접어들어 2.3㎞ 가면 보이는 강당골 주차장 입구에서 길을 따라 200여m를 올라간 지점 오른쪽으로 계곡 건너편에 있다.

[변천]

외암서사는 1707년(숙종 33)에 외암 이간이 강학을 하려고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한 외암정사(巍巖精舍)가 100여 년 뒤에 기능과 명칭이 바뀐 곳이다. 추사 김정희가 쓴[혹은 수암 권상하의 글씨라고도 함] ‘관선재(觀善齋)’라는 편액 때문에 관선재로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조선 말기의 온양군 읍지에는 외암 이간이 이곳에서 천서(泉西) 윤혼(尹焜)[1676~1725]과 함께 강학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1810년(순조 10)에 외암 이간이 이조판서로 추증되고, 문정공(文正公)의 시호가 내려지자 후손과 지역 유생들이 1816년(순조 16) 이간관선재에 배향하면서 외암서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외암영당’이라는 이름도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외암서사 개칭 이전에 영정을 봉안하고 기렸던 것으로 보인다.

외암서사는 1765년(영조 41)년 중수가 이루어졌고, 그후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 대상이 되자 이를 피하기 위해 공주 마곡사에서 불상을 모셔다 안치하고 외암서사강당사(講堂寺)라는 절로 바꾼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관선재 건물 맞은편 석축 기단 위의 정확한 건립 시기가 확인되지 않는 건물에 불상을 모시기도 했는데, 1999년에 밖에 별도로 대웅전을 세운 뒤 새로 건물을 중수하여 『외암유고[외암집]』의 목판을 보관하는 공간, 제사 공간 등으로 사용해 왔으며 목판은 최근에 별도 건물을 지어 옮겨 보관하고 있다.

[형태]

외암서사광덕산 정상에서 북북서 방향으로 뻗어내린 산줄기 끝의 동향 사면, 강당골계곡 옆의 땅을 고르고 건물을 지었는데, 현존하는 건물의 전체적 평면은 ‘ㅁ’ 자형을 하고 있다. ‘관선재’ 편액이 걸린 본 건물은 ‘ㄱ’ 자 형태이다.

[현황]

외암서사 자리는 강당사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본래 외암서사였던 건물에 불사가 마련된 곳으로 일반 사찰보다는 서원, 조선시대 명문 사가(私家)의 형태를 하고 있다. 관선재 건물은 승려들이 기거하는 요사채로 이용되고 있다. 옛 건물 외부 뒤쪽에는 대웅전과 목판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걸려 있던 ‘외암서사’ 현판은 외암마을건재고택에 전해진다.

[의의와 평가]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출신의 외암 이간을 기리기 위한 외암서사[현재 관선재강당사]와 그 일대는 조선 후기의 유학자 이간의 학문과 관련된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소중한 유적이다. 다만, 서원 성격도 지니는 서사였지만 제사 외에 서원의 핵심 기능 중 하나인 교육과 관련해서는 확인되는 사항이 없다. 서원 철폐령을 피해 강당사라는 절로 이름과 성격을 바꾸어 건물을 보존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고, 유교문화와 불교문화가 공존하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곳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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