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는 “삶터를 잡는 데에는 지리와 생리, 인심이 좋아야 하고 아름다운 산과 물이 있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삶터를 정하는 데 가려야 할 것이 많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산과 물이 주민들의 생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한편 마을의 경관을 형성하는 데에도 한몫을 차지한다고 믿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마을 뒤로 산이 있고 마...
금소의 역사에서 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의 위상은 남다르다. 이현일은 1701년 금소로 이주하면서 주민들과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된다. 퇴계 이황의 제자인 김성일(金誠一)의 학문은 장흥효(張興孝)를 거쳐 이휘일(李徽逸)과 이현일 형제에게 전해졌는데, 장흥효와 이휘일은 일생을 처사로 지냈으나, 이현일은 이조판서까지 올랐다. 또한 이현일은 3...
금소는 일제강점기에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임하면의 3·1운동은 임찬일(林贊逸)이 고종의 장례에 참가했다가 독립선언서를 가져오면서 모의되었다. 금양의숙(錦陽義塾)에서 수학한 임찬일은 고종의 장례에 참가하기 위해 상경하여 봉도단(奉悼團)에 가입하였다. 귀향 후 그는 즉시 안동의 김원진(金源鎭)과 논의하고 독립선언서를 준 후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