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B01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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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양명 |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는 “삶터를 잡는 데에는 지리와 생리, 인심이 좋아야 하고 아름다운 산과 물이 있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삶터를 정하는 데 가려야 할 것이 많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산과 물이 주민들의 생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한편 마을의 경관을 형성하는 데에도 한몫을 차지한다고 믿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마을 뒤로 산이 있고 마을 앞으로는 내[川]가 흐르는 금소의 경관은 무척 수려하다.
금소는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속한다. 안동시내에서 동남쪽으로 12㎞ 정도 떨어진 곳에 터를 잡고 있는데, 마을 뒤로 일월산(日月山)의 지맥인 뒷산이 서 있고 마을 앞으로는 길안천이 흐른다. 행정지명으로 금소천이라 불리는 길안천을 건너면 해발고도 210m의 비봉산(飛鳳山)이 솟아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취락을 이루고 있다.
멀리서 보면 비봉산과 나머지 봉우리들이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것 같다.
금소는 풍수지리상 거문고 형국으로 알려져 있다. 비봉산 정상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을 앞들에 관개(灌漑)하는 수로의 물이 비단폭을 펼쳐 놓은 듯 물이 흘러서 예전에는 마을 이름을 금수(錦水)라고 불렀다. 그러다 “오동수(梧桐樹)에는 거문고가 있어야 부합이 된다.”는 설에 따라 마을 이름을 금소(琴韶)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비봉산은 그 이름에서 드러나듯 봉황이 날아가는 형국이다. 이 때문에 금소리 주민들은 산의 기운 덕분에 마을이 평안하고 인재가 많이 났으며 부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여긴다. 금소리에 거주하는 남대원 옹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봉황이 길한 동물이니까 우리 마을이 기지(基地)가 좋지. 살기가 좋은 마을이지, 기지가 좋으니까. 인재도 많이 나고 요즘은 다들 밥 잘 먹고 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잖아. 그 시절에도 여기는 부촌이었다고.”
비봉산에는 옛 남인사의 흔적인 법당이 있던 자리와 과거에 스님들을 화장했던 곳으로 전하는 ‘중상골’이 있다. 그리고 안동권씨의 비석과 기우제터도 남아 있다. 비봉산 아래로 흐르는 하천과 산 사이에 풍수지리적으로 조림(造林)한 ‘쑤’가 있었는데 1934년의 갑술년 대홍수와 1959년의 사라호 태풍 때 떠내려가서 그 자리에 제방을 쌓았다.
길안천은 영천 보현산(普賢山, 해발고도 1,124m)에서 발원하는데, 길이가 약 70㎞에 달하며, 금소들의 젖줄 구실을 한다.
그래서 여름에는 주민들뿐 아니라 더위를 피해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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