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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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琦鎬 |
영어음역 | Yi Gih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237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류현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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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237 |
성별 | 남 |
생년 | 1888년 |
몰년 | 1933년 |
본관 | 진성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진성(眞城). 1888년(고종 25)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237번지에서 출생하여 1933년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이기호는 1919년 3월 안동시 예안면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도산면에서도 만세 시위를 일으킬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마침 예안면 시위에 참가했던 이용호·이극호와 도산공립보통학교 학생인 이호기(李鎬基)와 함께 뜻을 모아 도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을 규합하고자 설득하였다.
3월 18일 오전 11시경에 이용호·이극호 등이 주동이 되어 마을 앞 큰 나무 아래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자, 이기호도 마을 주민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을 벌였다. 도산공립보통학교 운동장에서는 이호기를 중심으로 한 30여 명의 학생들이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이기호는 1919년 4월 2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징역 4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3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