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6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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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極鎬 |
영어음역 | Yi Geukho |
이칭/별칭 | 성용(聖用)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240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류현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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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240 |
성별 | 남 |
생년 | 1891년 |
몰년 | 1938년 |
본관 | 진성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성용(聖用)이다. 1891년(고종 28)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240번지에서 출생하여 1938년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이극호는 1919년 3월 17일 안동시 예안면에서 면장인 신상면(申相冕)의 주도로 일어난 예안면의 1차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예안장터에 모인 시위 군중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부르며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집으로 돌아오던 이극호는 이용호·이기호와 함께 의기투합하여 도산면에서도 만세 시위를 전개할 계획을 세우고 도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을 규합하고 시위에 참여하도록 권유하였다.
다음날인 3월 18일에 이극호가 마을 앞 개울가의 큰 나무 아래에서 주민들과 함께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자, 이기호를 비롯한 도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도 학교 운동장에서 일제히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이극호는 1919년 5월 26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6월 2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