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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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繪洛 |
영어음역 | Gim Hoerak |
이칭/별칭 | 현우(現于),경승(景承)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한준호 |
성격 | 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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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
성별 | 남 |
생년 | 1844년 |
몰년 | 1896년 |
본관 | 의성 |
대표경력 | 안동의진 포장 |
[정의]
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개설]
김회락은 본관이 의성(義城)으로 1844년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현우(現于)·경승(景承)이며, 서산 김흥락(金興洛, 1827~1899)의 사촌 동생이다. 1896년에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명리 야산에 있다.
[활동사항]
김회락은 일찍이 서산사숙(西山私塾)에서 수학하였고,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등으로 전국에서 의병 항쟁이 펼쳐지자 안동의진(安東義陳)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특히 일직면 귀미리 출신인 김도화(金道和)가 의병장으로 추대된 뒤 안동의진의 포장(砲將)을 맡아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그 후 북후면 옹천 전투에서 패한 뒤 서후면 금계리 의성김씨 학봉 종택에서 척후장 김진의(金鎭懿)와 함께 일본군과 관군에게 체포되어, 1896년 7월 22일 새벽 안동부로 끌려가 순국하였다. 김회락은 순국하면서 아내에게 “보수(報讎: 원수를 갚음)를 가르쳐라” 하고 고함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총에 맞아 피가 흐르자 “이 피가 어떤 피인데 이렇게 흘릴 수가 있나” 하면서 도포 자락으로 감쌌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