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6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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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鎭懿 |
영어음역 | Gim Jinui |
이칭/별칭 | 미경(美卿),학운(鶴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
집필자 | 한준호 |
성격 | 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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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
성별 | 남 |
생년 | 1855년 |
몰년 | 1930년 |
본관 | 의성 |
대표경력 | 안동의진 척후장 |
[정의]
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개설]
김진의는 본관이 의성(義城)으로 1855년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미경(美卿), 호는 학운(鶴雲)이다. 1930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활동사항]
김진의는 1882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승지를 역임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등으로 전국에서 의병 항쟁이 펼쳐지자 안동의진(安東義陳)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특히 일직면 귀미리 출신인 김도화(金道和)를 의병장으로 추대하여 안동의진을 정비할 때 류창식(柳昌植)·권철연(權徹淵) 등과 함께 간부를 선임하는 일을 맡았다.
김도화가 의병장으로 추대된 뒤 김진의는 제2차 안동의진의 척후장을 맡아 적극적으로 활동하다가 북후면 옹천 전투에서 패한 뒤 피신하였다. 그러나 서후면 금계리 의성김씨 학봉 종택에서 포장 김회락(金繪洛)과 함께 일본군과 관군에게 체포되었으며, 김진의는 1896년 7월 22일 새벽 안동부로 끌려가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04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