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D010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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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 488-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정현 |
옹천역(甕泉驛) 은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3리에 위치한 중앙선의 역이다.
1941년 7월 1일에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그런데 이 옹천역 개통은 전통적인 농촌마을인 옹천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당시 중앙선 기차의 역으로는 옹천 아래에 있는 장기마을이 주요 후보지였으나, 옹천 주민들, 특히 진주강씨들이 적극적으로 역을 유치하고자 단결된 힘을 통해 관철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옹천장 역시 장기리 쪽에 가깝게 형성되어 있었으나, 옹천역이 들어서면서 지금의 삼거리 쪽으로 옮겨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말과 현대가 공존하는 변동기에 등장한 기차는 사람들은 대도시로 끌어들이는 촉매 역할을 했다. 하지만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안동 지역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옹천마을 주민들은 급격하게 변동하는 사회와 보조는 맞추되 전통적인 생업으로서 농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를 전후해서 담배, 양잠 등도 열심히 했지만 대체로 벼농사를 중심으로 생업을 꾸려가면서 옹천장을 중심으로 한 상업적 기반도 적극 활용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이다.
신농씨의 후예로 자부하는 진주강씨 주민들은 농사에 더욱 적극적이었다. 그렇기에 주민들은 거들먹거리지는 않지만 옹천만큼 부자 많은 곳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 착실하게 농사를 짓고 저축을 해나가는 풍토가 잘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서슬 퍼런 일제의 압제를 피해 수많은 재화를 독립운동자금으로 선뜻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강한 민족정신과 함께 착실하게 모아둔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근에서 큰돈이 필요하면 옹천 사람에게 알아보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였단다.
현재 옹천마을에서는 벼농사, 산약, 과수 등이 주요 작물로 재배되고 있다. 500여 가구에 이르는 노동력을 바탕으로 새 농촌의 꿈을 이뤄가고 있는 것이다. 신농씨의 후예로서 농업에 매진하고, 새로운 특용작물로서 산약을 재배하고, 자연적 조건을 적극 활용하여 과수농사를 지으며, 이를 효율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옹천장과 산약가공공장 등을 운용하고 있는 옹천마을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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