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D01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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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조정현 |
옹천리는 금계산과 옥계천이 마을을 편안하게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를 일컬어 ‘단지형국’이라고 표현했으나, 마을에서 ‘박사님’으로 불리는 강신중 옹은 ‘금계포란형’으로 설명하였다. 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이라는 것이다. 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 형국과 단지형국은 모양이 비슷하다. 그런데 왜 금계포란의 뜻이 지명에 들어가지 않고 단지의 뜻이 지명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강신중 옹에게 물어 봤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옹천이라는 거는 그 중간에 생겼고. 그 전에는 용전이라고도 그랬어요. 용용(龍) 자, 밭전(田) 자, 이 ‘전’자라는 거는 머로 그먼(그러면), 그 저 실농씨(神農氏)가 그 저 5천 년 전 실농씨 아이래요, 중국의 실농씨. 염제(炎帝) 실농씨라 카만, 농사를 인제 거 실농씨가 맨든 의약 제조 긑은 게, 농사 긑은 게 전부 실농유업(神農遺業)이라 글체(그러지). 농사를 가주고. 거 인제 실농씨가 우리 강(姜氏)이그던요. 썽이 강이그던요. 강이께네, 인제 농사를 질라만(지으려면) 밭이 있어야 된다꼬 해가주, 우리 강가들 사는 데는 전(田) 자를 놓으만 좋다 해가주, 그래 여 용전이라고 그랬어요.
옹천(甕泉)이라 카는 거는 여기 모르지요. 우리 옹천이라는 건 인제 지역이 똑 샘긑이(샘같이) 생겼다고 인제 옹천이라 그랬지요. 지역이 인제 동글랗게 짚으게(깊게) 샘긑이 생겼다꼬. 요새는 저기 저 [남쪽을 가리키며] 저 밑이 저 철도 나는 바람에 이래, 참 저 저 흩쳐부러 글치(흩어 버려 그렇지), 거 그전에 사무 이쯤 나왔던 게, 똑 단지 긑이 그래 생겼지. 그래가주 여 옹천이라고 짓는 거 긑애요, 확실히는 몰래도.”
강신주 옹의 말처럼, ‘용전’에서 ‘옥천’으로 변했다가 단지형국을 뜻하는 ‘옹’자와 맑은 샘을 뜻하는 ‘천’자가 조합되어 현재의 마을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런데 본래 용바위가 있는 밭이라는 뜻, 거기다 신농씨의 유업을 이어받은 곳이라는 의미의 용전 혹은 옥천에서 왜 옹천으로 마을 이름이 변했을까?
이는 안동이라는 전체적인 세력판도에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안동 지역의 유명한 세도가들이 신성한 ‘용’ 자를 아무 곳에서나 쓰지 못하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1608년(선조 41)에 편찬된 경상도 안동부(현 안동시) 읍지 『영가지(永嘉誌)』에도 ‘옹천’이란 지명이 나오고 있어 실상은 반대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즉 처음에는 옹천이라 불렸으나 마을 사람들이 ‘용전’이나 ‘옥천’ 등 더 아름답고 의미 있는 마을 이름으로 불리기를 소망해서 자의적으로 이름을 바꾼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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