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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처와 소실을 거느린 서낭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C020201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미영

오미리의 동제당은 원당과 중당, 하당으로 3당 체계를 이루고 있다.

이들 삼당 가운데 원당은 남편에 해당하는 서낭신이고, 중당과 하당은 본처와 소실에 해당한다. 상사나무 둑에 자리하고 있는 원당은 서낭당으로 불리기도 한다. 원래 3백 년 이상 되는 소나무를 모시고 있었으나 30년 전 태풍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추원사(追遠祠) 경내에 있던 은행나무를 옮겨다가 심어 두었다.

중당과 하당은 논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중당은 ‘윗조산당’으로, 하당은 ‘아랫조산당’으로 불린다. 그런데 원래 중당에는 느티나무를 신체로 모시고 있었지만, 논 주인이 경지정리를 하면서 베어 버리고 바위만 남겨 두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중당의 바위를 하당인 아랫조산당 옆에 가져와서 합당을 시켰다. 본처를 소실 곁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당시 본처와 소실을 함께 모시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신체가 사라진 채 바위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는 동제당보다는 훨씬 낫다는 의견으로 모아지게 되었다.

이처럼 오미리의 동제당은 남편에 해당하는 서낭신과 본처와 소실에 해당하는 3당을 모시고 있는 셈인데, 이런 이유로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삼내외’라고 칭하고 있다. 아울러 원당을 ‘할배’, 중당을 ‘큰할매’, 하당을 ‘적은할매’라고 하며, 이들을 함께 부를 때는 ‘할매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서낭신으로 모시고 있던 소나무가 태풍으로 쓰러졌을 때 추원사의 은행나무를 옮겨 심으면서 숫나무인가 암나무인가를 두고 마을 사람들 간에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단다. 즉 서낭신이 남편에 해당하므로 숫나무를 심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견이 있었는가 하면, 시절도 변하고 했으니 비합리적인 믿음보다는 기왕이면 열매를 맺는 암나무를 옮겨 놓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열매를 수확하여 큰 수입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면 명실공이 본처와 소실을 거느리고 있는 서낭신인 만큼 숫나무를 심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으로 모아져서 숫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정보제공]

  • •  하숙남(여, 1926년생, 오미리 거주)
  • •  송후남(여, 1928년생, 오미리 거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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