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B03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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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양명 |
동채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은 대장이다. 동채 위에 오른 대장은 각 부분의 동채꾼은 물론 자기 편 구경꾼들까지 총괄, 지휘하면서 동채꾼들이 효과적으로 움직여 상대편을 제압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대장의 진가는 무엇보다 동채끼리의 공중전에서 드러난다. 경험이 풍부한 대장의 능숙한 지휘는 동채를 민첩하게 움직여 승리로 이끌기 때문이다.
1940년대 금소마을 동채싸움에서 서부의 대장으로는 금소로 이주해 오기 전부터 읍내 동채에서 활약한 경험으로 명장이란 이름이 헛되지 않은 안기어른(조원선)과 솔안어른(조목규)이었고, 이에 맞서 동부에는 학산어른(임병구)과 기포어른(임형일)이 용맹하고 민첩한 대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동채싸움에서 대장 못지않은 중요한 역할이 머리꾼이다. 머리꾼은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의 연령층에서 자원하며, 기골이 장대하고 강기 있는 사람들로 30~40명 정도 선발한다. 그러나 금소의 경우 건장한 외적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서 누구나 머리꾼이 될 수는 없었다. 부상의 위험성 때문에 자손이 귀한 집안의 사람은 될 수 없었으며, 머리꾼으로 선정되더라도 아랫마의 경우 예천임씨, 웃마의 경우 울진임씨나 예천임씨가 아니면 최선봉에 나서기 어려웠다.
금소는 임씨가 지배적인 동성마을이어서 임씨 이외의 타성이 앞으로 나섰을 경우 상대편 머리꾼들이 사정없이 덤벼들어 크게 다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채가 텃논에 들어가면 대장을 태운 동채를 뒤로하고 먼저 머리꾼들의 싸움이 시작된다.
‘동채싸움은 머리꾼 싸움’이라 할 정도로 머리꾼들의 싸움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이 싸움에서 패해 어느 한쪽의 앞머리가 일방적으로 터지면 상대편 머리꾼에게 금방 물부리를 점령당해 동채끼리 어울리기도 전에 패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편은 모든 힘을 머리꾼 싸움에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다.
머리꾼 싸움의 격렬함은 “밀백이 할 때 서로 미는 힘이 너무 강해서 갈비뼈가 부러졌다.”거나, “보름날 먹은 찰밥이 다시 목구멍으로 기어올라 왔다.”, 혹은 “발이 공중을 둥둥 떠다닌다,”라는 주민들의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숙질(叔姪) 간에도 가리지 않고’ 전개되는 머리꾼 싸움은 보통 한 시간여 계속되며, 길면 두 시간이 넘게 진행되기도 하였다고.
이 싸움에서 양편의 전력이 엇비슷해 앞머리가 거의 동시에 터지면 싸움은 동채 간의 공중전으로 양상이 바뀐다. 양편의 대장은 서로 상대방의 물부리를 자기편 물부리 밑에 넣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데, 상대편의 물부리가 밑에 깔리면 동채꾼들이 물부리에 달라붙어 누르기 때문에 좀체 빠져나오지 못하고 끝내는 동채가 땅에 떨어져서 패하게 된다. 싸움이 절정에 이를수록 구경꾼과 놀이꾼은 물론 남녀노소의 구별까지 없어질 만큼 텃논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싸움에 몰입하였다.
머리꾼 싸움을 할 때 놀이꾼들은 주먹을 쥔 양팔을 서로 교차시켜 가슴에 붙이고 상대편을 밀어붙이기만 해야 한다. 이것은 상대방과 자신을 동시에 보호하기 위한 규칙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아서 상투를 뜯기는 일이 허다했다고. 그러나 싸움의 흐름과 관계없이 동채 위에 올라탄 상대편의 대장을 떨어뜨리거나 동체를 훼손하는 행위는 엄격하게 지켜야 했다. 이를 어길 경우 상황에 따라 싸움을 다시 시작하거나 취소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