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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A010201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임재해

하회마을의 대표적인 산 꽃뫼(일명 화산(花化))는 꽃내(일명 화천(花川))과 함께 산태극수태극의 형국을 이룬다. 꽃뫼는 태백산맥의 줄기를 타고 있는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산의 한 지맥이 남서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낙동강과 만나면서 머무른 해발 271m의 나지막한 산이다. 하회는 이 꽃뫼 자락의 매듭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꽃뫼의 지맥이 충효당 뒤뜰에 이르러 멎었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화산의 지맥이 충효당에서 오른쪽으로 살짝 꺾여 양진당까지 와서 멎었다고 하는 이도 있다.

충효당은 뒤뜰이 상당히 넓은데, 이렇게 꽃뫼의 지맥이 맺히는 곳이라고 하여 지금도 충효당 안채 바로 뒤로 널따란 잔디밭을 만들어 공터로 남겨두고 있다고 한다.

꽃뫼 능선에는 서낭당이 마치 마을을 내려다보듯 자리 잡고 있다.

서낭당은 서낭신을 모신 당으로 하회마을에서 중요한 신앙 대상이다. 꽃뫼는 하회마을의 형국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 능선에 서낭당이 자리 잡고 있어 신앙적 차원에서 중요한 위상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서낭신의 유래로 볼 때 하회마을 서낭당은 의성김씨 할머니당이나 처자당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자리 잡고 있는 위치로 보아 서낭당에 얽힌 신앙의 양상을 한층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국사당과 삼신당보다 높은 꽃뫼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서낭당은 신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신성한 장소’로 이해할 수도 있다.

서낭당에는 ‘서낭대’라고 하는 긴 장대의 신내림대가 보관되어 있는데, 별신굿을 할 때에는 제일 먼저 서낭당에 올라가 당신을 내림대에 받아 모시는 일부터 했다고 한다.

원래 하회에는 공동묘지가 없었는데,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마을 사람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마을 입구 꽃뫼 기슭에 공동묘지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1960년대에 마을 사람들이 이 공동묘지를 옮기려고 여러 모로 애를 썼으나, 부지를 마련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어 실행하지 못했다.

어쨌든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서낭당 근처 꽃뫼에는 고분이나 공동묘지가 전혀 없었다. 그것은 일제강점기 이전에 ‘행주형’이나 ‘다리미 형국’이라는 풍수설에 따라 마을에 우물을 파지 않았던 맥락과 같은 수도 있으며, 서낭당이 있는 신성한 산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의도도 깔려 있었던 듯하다.

[정보제공]

  • •  류시황(남, 1957년생, 하회리 거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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