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300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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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溫溪宗宅三栢堂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중마길 20[온혜리 580]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방규환 |
최초 설립지 | 온계 종택 삼백당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중마길 20[온혜리 5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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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종택 |
면적 | 1,611㎡[대지]|256㎡[건평]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 있는 조선 전기 종택.
[개설]
삼백당(三栢堂)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둘째 형인 온계(溫溪) 이해(李瀣)[1496~1550]가 20세 되던 1520년경 노송정(老松亭) 본가에서 분가한 뒤 집을 지어 정착한 종택(宗宅)이다. 이해가 성균관에서 수학하는 동안 이황이 어머니 춘천 박씨(春川朴氏)를 모시고 5년간 거처하던 곳이다.
지암(芝庵) 이인화(李仁和)[1859~1929]는 3차 선성 의진(宣城義陣)을 이끈 의병장으로 이해의 12세손이다. 1895년(고종 32) 명성 황후 시해 사건 이후 단발령이 내려지자 예안 지역에서 조직된 선성 의진에 참여하여 선봉장이 되었다. 이때 온계 종택 삼백당은 의병 활동의 의병소 역할과 전략 회의 장소 및 숙소로 활용되었다. 안동 유림 의거의 중심 역할을 하던 퇴계 종택과 함께 비슷한 시기인 1896년 일본군에 의해 불태워져 버렸다.
[건립 경위]
온계 종택 삼백당은 400여 년 동안 종택의 역할을 하였다. 종택을 복원하기 위해 2005년 9월 17일 종택 복원이 발의되어 ‘온계 선생 종택 복원 사업 추진 위원회’를 구성하여 퇴계 종가와 충재 종가, 학봉 종가, 서애 종가의 종손과 진성 이씨(眞城李氏) 대종회장을 비롯해 조순 민족 문화 추진회 회장 등 134명이 위촉되었다. 이후 국가 보훈처, 경상북도, 안동시 등의 지원을 받아 2009년 3월 이인화 의병장 생가 복원 사업이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온혜 초등학교 옆 옛터에 착공되었고 소실된 지 110여 년 만인 2011년 5월 5일 낙성식을 하였다.
[구성]
대지 1,611㎡, 건평 256㎡ 규모로 지어졌고 사랑채, 안채, 대문채, 삼문, 사당 등은 소실 전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온계 종택 삼백당에 전하는 가도(家圖)는 3점이다. 이 중 2점은 서책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의 표지 뒷면에 그리거나 별지에 그려 붙어 있다. 한편 ‘삼백당’이란 명칭은 온계 선생의 손자 이유도(李有道)[1565~1626]의 당호를 사용하여 붙여졌다.
[현황]
온계 종택 삼백당에서는 다도, 다기 주머니 만들기, 한지 공예 등의 체험 활동과 한옥에서 숙박이 가능하다. 사랑채 3실, 큰방, 상방, 건넌방, 안사랑 3실로 총 9개 방에 최대 40여 명이 동시에 숙박 가능하다. 입실은 오후 5시, 퇴실은 이튿날 오전 10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