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30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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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鳳停寺靈山會掛佛圖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태장리 90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정희 |
제작 시기/일시 | 1710년 - 안동 봉정사 영산회 괘불도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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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0년 2월 24일 - 안동 봉정사 영산회 괘불도 보물 제1642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안동 봉정사 영산회 괘불도 보물 재지정 |
현 소장처 | 봉정사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태장리 901] |
원소재지 | 봉정사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태장리 901] |
출토|발견지 | 봉정사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태장리 901] |
성격 | 불화 |
작가 | 도문(道文)|설잠(雪岑)|승순(勝淳)|계순(戒淳)|해영(海英)|종열(宗悅)|성은(聖訔) |
서체/기법 | 비단 바탕에 채색 |
소유자 | 봉정사 |
관리자 | 봉정사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봉정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화.
[개설]
안동 봉정사 영산회 괘불도는 도문(道文), 설잠(雪岑), 승순(勝淳), 계순(戒淳), 해영(海英), 종열(宗悅), 성은(聖訔) 등이 그렸다. 비단 바탕에 채색되었다. 크기는 가로 575㎝, 세로 713.5㎝이다. 중앙에 커다랗게 표현된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8보살과 십대 제자가 둘러싸고 있는 간단한 구도이다. 2010년 2월 24일 보물 제164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여래는 오른손을 어깨 위로 올리고 왼손은 배 부분에 올려놓고 있어 아미타 수인을 취하는 듯하나 화기에 ‘영산회(靈山會)’라 적혀 있어 석가모니불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수인은 「성주 선석사 영산회 괘불탱」[1702년 제작, 보물 제1608호], 「예천 용문사 영산회 괘불탱」[1705년 제작, 보물 제1445호] 등에서 볼 수 있는 연꽃을 든 석가모니 도상에서 연꽃을 생략한 표현으로 이해된다.
화면 맨 아래에는 연꽃을 든 보살 삼존과 여의를 든 보살이 나란히 서 있으며, 이 가운데 여의를 든 보살은 문수보살이며 그 맞은편에 분홍색 연꽃을 든 보살은 보현보살로 추정된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위로는 화불이 있는 보관(寶冠)을 쓰고 정병(淨甁)을 든 관음보살과 보관에 정병이 있고 보협인을 든 대세지보살이 자리하고 있다. 십대 제자 가운데 백발의 노승과 젊은 승려는 가섭과 아난이다. 채색은 홍색과 녹색을 중심으로 부분적으로 청색, 노란색, 분홍색 등을 사용하였으며 명도와 채도가 낮아 전체 색감은 차분하다. 존상의 이목구비와 윤곽에 사용되는 필선은 두껍고 강하게 사용하였다.
[특징]
입상의 주불을 중심으로 보살과 권속들이 외호하는 형식의 영산회 괘불은 상주와 문경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 일대에서 유행하였으며, 「북장사 영산회 괘불탱」[1688년 제작, 보물 제1278호], 「문경 김룡사 영산회 괘불도」[1703년 제작, 보물 제1640호], 「남장사 괘불」[1788년 제작]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북장사 영산회 괘불탱」과 「문경 김룡사 영산회 괘불도」에 비해 사천왕, 팔금강, 호법신 등을 생략하여 구성이 단순한 데 비해, 여래와 그를 둘러싼 보살과 제자들의 크기 차를 크게 하여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의의와 평가]
1710년에 제작된 안동 봉정사 영산회 괘불도는 중앙에 커다랗게 표현된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8보살과 십대 제자가 둘러싼 간단한 구도를 취하고 있다. 입상의 본존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과 권속들이 둘러싼 이 같은 형식은 18세기 경상북도에서 유행하던 것인데, 다른 작품에 비하여 보살이 본존의 어깨 부분까지 올라오는 등 크게 묘사된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