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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신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2307
한자 恭愍王信仰
영어의미역 Gongmin King Faith
이칭/별칭 공민왕 가족신 신앙,공민왕가계신앙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집필자 조정현

[정의]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공민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신앙 형태.

[개설]

공민왕 가족신 신앙은 안동에 몽진을 온 공민왕을 비롯하여 공민왕 가족들을 신격으로 모시는 안동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신앙 형태이다. 안동 지역이 겪은 역사적 사건 가운데 민속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고려 말에 발생했던 공민왕 몽진인 것이다.

‘공민왕가계신앙’이라고도 한다. 공민왕과 그 가족신은 청량산 일대를 비롯하여 적지 않은 지역에서 공동체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즉, 역사적 인물을 신격화하여 공동체 신앙의 대상으로 수용하고, 그 인물뿐만 아니라 실제와 가상의 가족들을 신격화하였다.

[연원]

1361년 11월 19일 공민왕과 그 일행은 홍건적의 2차 침입을 피해 몽진을 시작하여 12월 15일 안동에 도착하였다. 근 한 달에 이르는 남행 기간 동안 공민왕 일행은 피폐한 민심과 겨울이라는 열악한 기후 조건 탓에 갖은 고초를 겪었지만 안동에 이르러서는 사정이 달랐다. 안동의 관민은 2월 신축일 공민왕 일행이 안동을 떠날 때까지 열과 성을 다해 공민왕 일행을 받들었다.

공민왕 몽진은 국토가 홍건적에 의해 유린을 당했던 아픈 역사이지만 안동은 공민왕의 방문으로 고려의 임시수도로서의 역할과 함께 안동대도호부 승격, 웅부안동과 영호루 현판글씨 등 지금도 안동의 역사적 상징으로 남아 있다. 또한 안동 지역에서는 불행한 과거를 중요한 문화 현상의 한 부분으로 승화시켰다. 바로 공민왕 신앙과 공민왕 가족신 신앙의 전승이다. 공민왕과 관련된 공동체 신앙은 촌락 사회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역사 인물의 신격화 특성을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다.

[전승]

공민왕계신을 모시는 지역은 예안면 신남리의 구티미·정자골·높은데, 도산면가송리·단천리·원천리(내살미), 풍천면하회리, 풍산읍 수리, 안동시 용상동 등의 9개 마을이 있다. 공민왕 가족을 섬기는 마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하회·수리·용상을 제외한 모든 마을들은 청량산왕모산성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산성마을·아랫뒤실·윗뒤실·고계·새터·등자다리·소용골·동다리·구티미·높은데·정자골·가송리·구티미 등은 청량산 인근의 마을이고, 내살미와 단천리왕모산성 주변에 있는 마을이다. 그러므로 지역적으로 볼 때, 공민왕 신앙은 청량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 신앙임을 알 수 있다.

공민왕계신을 모시는 마을들 중에서, 특히 공민왕신을 모시는 산성마을은 신앙의 중심지로서 공민왕신과 혈연을 의식하고 있으며, 가송리공민왕 딸신과 내살미의 어머니신과도 일정한 혈연의식을 보여준다. 공민왕의 민(閔)부인은 북곡(뒤실), 장녀는 가송, 차녀는 예안면 신남리 높은데, 3녀는 신남리 구티미에 각각 기거했다고 한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그 기거처라고 전해지는 곳에 당집을 세우고 현재까지 제사를 지내고 있다. 여기에 비해서 나머지 마을의 경우에는 대부분 상호간의 혈연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양상은 공민왕 신앙의 발원지가 산성마을로서 이곳을 중심으로 가송리와 내살미가 축을 이루어 공민왕 신앙이 확산되었음을 말해준다.

[제일]

공교롭게도 산성마을·가송리·내살미 등에서는 1년에 두 번씩 제사를 지내는데, 나머지 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14일 또는 15일에 한 번씩 동제를 지내고 있다. 특히 산성마을에서는 정월 14일과 백중, 가송리와 내살미는 정월 보름과 단오에 두 번씩 동제를 지낸다. 이런 양상은 이들 지역이 공민왕 신앙의 중심지로서 다른 마을보다 동신에게 더 많은 정성을 쏟고 있음을 보여주는 모습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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