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7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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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潤益 |
영어음역 | Im Yunik |
이칭/별칭 | 임종열(林宗烈),주현(周顯)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538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류현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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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538 |
성별 | 남 |
생년 | 1885년 |
몰년 | 1968년 |
본관 | 울진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임윤익(林潤益)은 본관이 울진이고, 이명(異名)은 임종열(林宗烈)이며, 자는 주현(周顯)이다. 1885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으며, 1968년 향년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임하면 오대리 냉천곡(어대골)마을에 있다.
[활동사항]
임윤익은 1914년 임하면 금소리에 설립된 금양의숙(錦陽義塾)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임찬일·임범섭·임득연이 임하면 시위를 준비하자 여기에 참여하여 3월 16일 길안장날에 거사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호응하는 사람이 적어 거사일을 연기하여 3월 21일 금소마을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펼쳤다.
임윤익은 노말수·임동숙 등과 함께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임하면소재지인 신덕리까지 행진하였다. 시위 군중과 함께 경찰 주재소와 임하면사무소로 몰려가 서류를 파기하고 기물과 건물을 부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일의 주동자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임윤익은 1919년 9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