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7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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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乭伊 |
영어음역 | Im Doli |
이칭/별칭 | 임석이(林石伊),임병칠(林秉七)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574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류현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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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574 |
성별 | 남 |
생년 | 1890년 |
몰년 | 1936년 |
본관 | 예천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예천(醴泉). 임석이(林石伊), 임병칠(林秉七) 등으로도 불렸다. 1890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574번지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1919년 안동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임돌이는 이 가운데 1919년 3월 21일 임하면 금소동과 신덕동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임하면 만세시위는 고종의 국장에 참여하고 돌아온 임찬일·임범섭·임득연 등이 중심이 되어 계획되었고, 여기에 임돌이·노말수·류북실 등이 결의하여 처음에는 3월 16일 길안 장날에 거사를 일으키기로 하였지만, 당일 호응하는 사람이 적어 다시 3월 21일로 연기하였다.
3월 21일 저녁 임돌이를 비롯한 금소마을 사람들은 금소에서 시작하여 면소재지인 신덕리까지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군중들은 주재소와 임하면사무소를 부수고 호구조사부 등 서류를 파기하였다. 다음날 일본 경찰의 검거로 체포된 임돌이는 1919년 7월 4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2년에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