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7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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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七星 |
영어음역 | Yi Chilse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고천리 132[고천지촌로 291]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류현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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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고천리 132[고천지촌로 291] |
성별 | 남 |
생년 | 1872년 |
몰년 | 1943년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이칠성은 1872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고천리 132번지[고천지촌로 291]에서 태어났다. 1919년 안동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이칠성은 이 가운데 1919년 3월에 안동면 중평동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중평동 편향시장 만세시위는 그 해 3월 초 고종 인산에 참가했다가 귀향한 류동시(柳東蓍)와 협동학교 인사들, 기독교 계통의 인사들 및 류연성(柳淵成)과 이칠성 등의 주도로 3월 21일 오후 1시경에 시작되었다.
이칠성은 이날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주도하였고, 주재소와 면사무소 등 일제가 조성한 공공기관을 파괴하고 지적도, 호적도 등의 공문서를 파기하며 격렬하게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이칠성은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소요와 건조물 손괴, 가택 침입, 상해죄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