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728 |
---|---|
한자 | 李承復 |
영어음역 | Yi Seungbo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 125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류현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
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 125 |
성별 | 남 |
생년 | 1884년 |
몰년 | 1959년 |
본관 | 고성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경양(景陽)이다. 1884년 지금의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에서 태어났으며, 1959년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 야산에 있다.
[활동사항]
2차 안동면 시위는 기독교 인사들과 안동 유림에 의해 두 갈래로 준비되고 있었다. 1919년 3월 18일 장날을 이용하여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인들이 주도하던 시위대와 안동 유림이 지휘하던 시위대가 서로 합세하여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승호는 이날 김영석과 함께 만세 운동에 참여하면서 3월 19일 새벽까지 군중들과 함께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군청·경찰서·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으로 몰려가 시위운동을 계속 벌였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이승복은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고 항소하였으나, 5월 10일 대구복심법원과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6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