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7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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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萬源 |
영어음역 | Yi Manwon |
이칭/별칭 | 해수(海水),산재(汕齋)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류현정 |
성격 | 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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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
성별 | 남 |
생년 | 1867년 |
몰년 | 1944년 |
본관 | 진성 |
대표경력 | 이강년 의진 독전장 |
[정의]
조선 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개설]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해수(海水), 호는 산재(汕齋)이다. 1867년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에서 태어났고, 훗날 지금의 안동시 풍산면 마애리로 이주하여 살았다. 1944년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활동사항]
이만원은 전기·후기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으로 전국에서 의병이 조직되어 활동을 전개할 때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활약하던 류인석(柳麟錫) 의진에 가담하여 유격장을 맡아 일제에 항거하였다. 1907년(순종 1)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들어가 독전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이강년 의진과 더불어 1908년 5월에 안동으로 향했다.
이때 강원도와 경상북도 등지에서 모인 의병들과 연합하여 안동 지역 일대에서 일본 군경과 전투를 하였는데, 여기에서 이강년 의진의 중군을 맡아 3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전투를 벌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만원은 1909년 1월 15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월 27일 공주재판소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고 청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