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6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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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昶佑 |
영어음역 | Ryu Changu |
이칭/별칭 | 유창우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한준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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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
성별 | 남 |
생년 | 1884년 |
몰년 | 1921년 |
본관 | 풍산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1884년(고종 2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태어났다. 류창우는 1918년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에서 3·1 만세운동이 펼쳐지자, 1920년 6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이곳에서 류창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 이향(李香)을 통해 재무총장 이시영(李始榮)과 만나 독립을 위한 공채(公債) 모집에 종사할 것을 서약하고 신택균(申宅均)·신현휴(申賢休) 등을 보증인으로 하여 공채모집위원으로 임명받았다.
류창우는 독립공채를 휴대하고, 국내로 들어오기 위하여 1920년 9월 26일 일본 장기에 상륙하던 중, 잠복해 있던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이 일로 류창우는 1920년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받은 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1년 11월 2일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1991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