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6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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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淵益 |
영어음역 | Ryu Yeonik |
이칭/별칭 | 류양범,겸여,유연익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한준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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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
성별 | 남 |
생년 | 1901년 |
몰년 | 1992년 |
본관 | 전주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겸여(謙汝), 또 다른 이름은 류양범(柳良範)이다. 1901년(고종 38) 전주류씨 동성마을이었던,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출생하여 1992년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류연익은 일찍이 한문을 수학하며 쓰러져 가는 나라를 걱정하였으며,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에서의 3·1만세 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는데, 그중 류연익은 임동면 중평동 편항시장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임동면 만세시위는 류연성(柳淵成)·류동수(柳東洙) 등이 만세 시위를 계획하여, 장날인 3월 21일 오후 2시경 편항장터에 모인 시위 군중을 이끌면서 전개되었다. 또 이들은 시위 군중과 함께 주재소와 면사무소로 달려가 독립만세를 부르며 건물을 공격하는 등의 과감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된 류연익은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그는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고 전해진다.
[상훈과 추모]
199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