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6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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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鳳榮 |
영어음역 | Ryu Bongyeong |
이칭/별칭 | 류현영(柳顯榮),인가(仁可),진산(震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대석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한준호 |
성격 | 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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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대석동 |
성별 | 남 |
생년 | 1858년 |
몰년 | 1906년 |
본관 | 풍산 |
[정의]
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개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인가(仁可), 호는 진산(震山)이다. 185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대석동에서 태어났다. 안동시 북후면에 묘가 있다.
[활동사항]
류봉영은 어린 시절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마을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자랐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등으로 전국에서 의병항쟁이 펼쳐지자, 류봉영은 김상종(金象鍾)이 1896년 3월 25일 창의한 의성의진(義城義陣)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형인 류승영(柳承榮)도 의진에서 부장(副將)을 맡아 활동하였다.
의성의진은 창의한 후 8일 만인 4월 20일 구봉산 전투를 비롯하여 황산 전투와 청송 감은리 전투 등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의성군 점곡면 사촌마을이 관군에 의해 불이 타는 고통을 겪기도 하였다. 류봉영은 사촌마을이 불에 탄 후 의병의 재기를 위해 영양·예안(禮安) 의진과 연합전선을 모색하던 중 1906년 6월 24일(음력) 관군에 체포되어 이틀 뒤인 6월 26일 순국하였다.
[저술 및 작품]
『진산유고(震山遺稿)』가 전한다.
[상훈과 추모]
200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