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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650
한자 辛尙伯
영어음역 Sin SangbaEk
이칭/별칭 상선(相善)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구룡리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구룡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97년연표보기
몰년 1962년연표보기
본관 영월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영월(寧越). 호는 상선(相善)이다. 1897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구룡리에서 태어났다.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에 묘가 있다.

[활동사항]

신상백은 한문을 수학하며 쓰러져 가는 나라를 걱정하던 중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만세시위가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 지역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이 가운데 신상백임동면 중평동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임동면 만세시위는 류연성(柳淵成)·류동수(柳東洙)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장날인 3월 21일 오후 2시경 편항장터에 모인 시위 군중을 이끌면서 전개되었다. 또 이들은 시위 군중과 함께 주재소와 면사무소로 달려가 독립만세를 부르며 건물을 공격하는 등 과감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신상백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2년에 대통령표창을 받았으며,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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