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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608
한자 金衡鎭
영어음역 Gim Hyeongjin
이칭/별칭 농제(聾齊)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천전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천전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87년연표보기
몰년 1957년연표보기
본관 선성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형진은 본관이 선성(宣城)으로 1887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천전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농제(聾齊)이다. 1957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안동시 예안면 귀단산에 있다.

[활동사항]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김형진은 안동 지역에서 대규모 군중이 최초로 일으킨 3월 17일 예안면 1차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11일 밤 9시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이시교(李時敎)·이중원(李中元)·이남호(李南鎬)·백남학(白南鶴)·이광호(李洸鎬) 등을 면사무소 숙직실로 불러 『독립신문』을 보여 주면서 만세 운동을 일으킬 것을 제의하였다.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뜻을 같이하여 예안면 장날인 3월 17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면사무소의 등사판을 이용하여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대량으로 인쇄·제작하였다.

3월 17일 오후 3시 30분경 이광호·이동봉(李東鳳) 등이 군중을 이끌고 면사무소 뒤쪽 선성산(宣城山)에 올라가 일제가 세운 ‘어대전기념비(御大典記念碑)’를 쓰러뜨렸고, 이어 1,500여 명의 시위 군중은 예안면 주재소로 몰려가 독립 만세를 불렀으며, 약 600명은 산을 타고 안동 시내로 들어가 3월 18일 안동면 2차 시위에 합세하였다.

오후 7시 김형진은 시위 군중과 더불어 예안면 주재소로 몰려가 김두진(金斗鎭)과 함께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돌과 기와를 던져 유리창을 깨고 안으로 들어가 만세를 부르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3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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