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5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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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益根 |
영어음역 | Gim Ikge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신세동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한준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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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신세동 |
성별 | 남 |
생년 | 1871년 |
몰년 | 1921년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1871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신세동에서 태어난 김익근은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1919년 3월 18일 안동면 2차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안동면 2차 만세시위는 계획 단계에서 안동교회와 유림들에 의해 두 갈래로 준비되고 있었다.
김병우(金炳宇)와 김익현(金翊顯), 김계한(金啓漢) 등은 서로 의논하여 3월 18일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이들은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철저히 준비하였다. 드디어 3월 18일 장날 낮 12시 삼산동 곡물전(현 신한은행과 농협 안동지부 중간 지점) 앞에서 만세 함성이 터져 나왔고, 이들은 안동시 내 곳곳을 다니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다가 19일 0시 50분 무렵 2,500여 명이라는 시위 군중들이 모여들자 일제 식민 통치 기관인 군청과 경찰서, 대구지방재판소 등에 몰려가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였다.
당시 김익근은 1919년 3월 19일 오전 1시경 시위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경찰서와 군청 앞으로 행진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리고 1919년4월 7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6월형을 언도 받고 항소하였다가 5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1년형을 언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