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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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濟寧 |
영어음역 | Gwon Jenyeong |
이칭/별칭 | 사문,구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명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강윤정 |
성격 | 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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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명리 |
성별 | 남 |
생년 | 1850년 |
몰년 | 1903년(고종 40) |
본관 | 안동 |
대표경력 | 안동의진 서기 |
[정의]
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사문(士文), 호는 구산(龜山)이다. 1850년(철종 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명리에서 출생하여 의병에 참여할 당시에는 이웃 마을인 이개리 보현에 살았다. 1903년(고종 40) 세상을 떠났다.
[활동사항]
권제녕은 1895년 12월에 일어난 안동의 전기 의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권제녕은 퇴계학맥의 정맥을 이은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문인이었다. 김흥락의 문하에서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배출되었는데, 권제녕도 그중 한 사람이다. 1895년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단발령과 복제 개혁을 추진하는 등 조선의 국권을 빼앗기 위한 침략정책을 가속화하자, 권제녕은 국권 상실의 위기를 절감하였다. 무장투쟁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고자 1896년 1월 권세연(權世淵) 의진(義陣)에 참여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권세연의 안동의진 수백 명은 1896년 1월 17일 안동의 관찰부(觀察府)를 점령하고 무기를 빼앗아 안동 일대를 장악하였는데, 이때 권제녕은 의진의 포군(砲軍)을 모집하고 포고문(布告文)을 작성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권제녕은 권세연 휘하에서 서기를 맡아 활약하면서 「의중일기(義中日記)」를 남겼다. 이 「의중일기(義中日記)」에는 1896년 1월 3일부터 3월 9일까지 40일 동안의 권세연 의진의 활동이 담겨 있다.
[저술 및 작품]
저술로는 『구산유고(龜山遺稿)』 제5권과 「의중일기」가 있다.
[상훈과 추모]
2002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