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4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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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響山集 |
영어음역 | Hyangsanjip |
영어의미역 | Collection of Hyangsanjip Works |
이칭/별칭 | 이만도 문집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안병걸 |
성격 | 문집|시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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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이만도|이중철|이강호 |
저자 | 이만도 |
편자 | 이중철|이강호 |
간행자 | 이중철|이강호 |
저술연도/일시 | 1842년~1910년 |
간행연도/일시 | 1916년 |
권수 | 21권 |
책수 | 11책 |
사용활자 | 복판본 |
가로 | 21㎝ |
세로 | 32.5㎝ |
표제 | 響山集 |
소장처 | 안동대학교 도서관|한국국학진흥원 |
소장처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388[경동로 1375]|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220[퇴계로 1997] |
[정의]
조선 말기 경상북도 안동 출신 문신인 이만도의 문집.
[개설]
이만도(李晩燾, 1842~1910)는 1866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성균관전적, 지평, 중학교수(中學敎授), 집의, 사성, 응교, 장악정, 양산군수, 공조참의, 동부승지 등을 지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될 때, 최익현(崔益鉉)이 반대 상소를 올리자,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한목소리로 공격을 하였다. 그 때 집의로서 탄핵문의 문구가 사리에 맞지 않다고 없앴다가 대사헌의 미움을 받아 집의직을 삭탈당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예안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한일합방이 체결되자, 유서를 남기고 음식을 끊어 24일 만에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1916년 이만도의 조카 이중철과 이강호 등이 이만도가 남긴 글을 모아 편집, 간행하였다.
[서지적 상황]
안동대학교도서관과 한국국학진흥원 등에 소장되어 있다. 본서의 저본은 안동대학교도서관 상계광명실문고(上溪光明室文庫) 소장본으로 1933년에 간행된 것이다.
[형태]
21권 11책이며, 목판본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향산집(響山集)이다. 어미는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광곽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다. 행수는 10행, 한 행의 자수는 22자, 주석은 쌍행이다.
[구성/내용]
권1에는 244수의 시가 있고, 권2에는 소·차·경연강의 등이 있다. 권3~6에는 편지가, 권7~8에는 잡저, 권9에는 서(序), 권10에는 기(記)·발(跋)이, 권11에는 명·상량문·축문 등이 들어 있다. 권12에는 비(碑)·표묘, 권13~15에는 묘갈명·권16~18에는 행장, 권19에는 가장이 있다. 부록은 권1·권2로 되어 있고, 발문은 이정철과 이중균이 썼다.
권2에 들어 있는 「의상봉사(擬上封事)」는 1894년(고종 31)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의 흉계를 폭로하고 오로지 전통적 우호국인 청나라와의 협력 관계를 적극 긴밀히 하여야 함을 강조한 글이다.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는 1905년 을사조약에 찬성한 오적의 죄상을 춘추대의에 입각하여 엄히 성토하고 그들을 처형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위정척사(衛正斥邪)의 우국충정을 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말기 영남, 특히 안동 지역 학자들의 학문과 그 실천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저자는 외세에 대항하고자 의병 활동을 일으키고, 한일합방이라는 치욕에 직면하여 순국의 길을 택한 강직한 삶을 살다 간 의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