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4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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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中轍 |
영어음역 | Yi Jungcheol |
이칭/별칭 | 중원(仲圓),효암(曉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
집필자 | 배종석 |
[정의]
조선 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의병.
[개설]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중원(仲圓), 호는 효암(曉庵). 할아버지는 이휘정(李彙廷), 아버지는 이만유(李晩逌),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승지를 지낸 김용락(金龍洛)의 딸이다. 묘소는 원당(元塘) 앞산인 효잠산(孝岑山) 병좌(丙坐)의 언덕에 있다.
[활동사항]
이중철은 어려서는 족부(族父)인 이만각(李晩慤)에게 배웠으며 뒤에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크게 성취했다. 두 스승의 문하는 시와 문장의 뜻과 의미가 엄숙하며 그윽하였다. 또 이돈우(李敦禹), 류건호(柳建鎬), 류필영(柳必永) 등과 교유하며 주로 시사(時事)에 대한 의논과 상제(喪祭)에 관한 문목 등을 논의하였다.
1895년 을미의병 때 안동의병의 참모가 되어 활약하였으며, 1902년 도신(道臣)의 천거로 혜릉참봉(惠陵參奉)에 제수되기도 하였다. 1910년 가을 이만도(李晩燾)가 망국의 한으로 자결하려 할 때 같이 죽으려 하였으나 “군도 죽는다면 사문(斯文)은 어찌 하겠느냐?”라고 만류하여 단념하고 더욱 학문에 전념하였다. 1913년에 도산서원(陶山書院) 원장이 되어 『도산급문록(陶山及門錄)』을 간행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효암집(曉庵集)』이 있다. 문집 중 잡저 「기제부제단합설무이변(忌祭祔祭單合設無異辨)」은 정주(程朱)와 퇴도(退陶)의 설을 인용하여 제례에 대해 논하고 있으며, 편지글 「서시아질급제손(書示兒姪及諸孫)」은 사람이 되는 도리를 밝혀 선행(善行), 독서, 봉사(奉祀), 책선(責善)하는 요점을 자질과 여러 손자들에게 훈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