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463
한자 李濟兼
영어음역 Yi Jegyeom
이칭/별칭 선경(善慶),사원(士遠),두릉(杜陵)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명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예천군 유천면 고산리
성별
생년 1683년연표보기
몰년 1742년연표보기
본관 진성
대표관직 율봉도찰방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선경(善慶)·사원(士遠), 호는 두릉(杜陵). 할아버지는 이운익(李雲翼), 아버지는 ‘소퇴계(小退溪)’로 불렸던 이동표(李東標)이다.

[활동사항]

이제겸은 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 유천면 고산리에서 태어났다. 1714년(숙종 40) 진사시에 합격하고 1724년(경종 4) 문과에 급제한 후 동몽교관, 승문원정자를 역임했고 1727년(영조 3) 율봉도찰방(栗峯道察訪)이 되었다. 이듬해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이제겸은 율봉에서 100리쯤 떨어진 증약관(增若館)이라는 곳에서 말 숫자를 파악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반란군이 율봉에 들어와 숨겨 놓은 역마를 모두 약탈해갔다. 이에 이제겸은 도순무사(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에게 사태의 전말을 보고하는 한편, 영남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키려 했으나 반란이 진압되어 그만두었다.

반란 진압 후 강필신(姜必信)의 무고로 평안도 선천(宣川)으로 유배되었다가 이후 다시 강원도 제천으로 옮겨 3년을 보낸 뒤 1735년 비로소 풀려났고 1741년이 되어서야 신원이 되었다. 유배지에서 돌아온 후 현재의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소천리에 창랑정사(滄浪精舍)를 짓고 초야에 묻혀 소요하였으며, 이광정(李光庭), 권강(權江)과 도의로 친교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4권 2책의 『두릉집(杜陵集)』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눌산리 구가곡(九佳谷)에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