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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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以性 |
영어음역 | Seong Iseong |
이칭/별칭 | 여습(汝習),계서(溪西),관서활불(關西活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만기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여습(汝習), 호는 계서(溪西). 증조부는 성륜(成倫), 할아버지는 성적(成績), 아버지는 승지 성안의(成安義), 어머니는 예안김씨(禮安金氏)로 호조참판을 지낸 김계선(金繼善)의 딸이다.
[활동사항]
성이성은 학업에 열중하여 13세 때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에게 보이니 크게 될 인물이라 하였다. 이후 학문에 더욱 정진하여 김굉필(金宏弼), 이연경(李延慶)의 학통을 이은 강복성(康復誠)의 문인이 되었다. 1610년(광해군 2) 진사가 되었으나 광해군조에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1627년(인조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34년 사간원정언, 홍문관부수찬, 홍문관부교리를 거쳐 이듬해 사헌부지평을 지냈다.
1637년 사간원헌납이 되어 윤방(尹昉), 김류(金瑬), 심기원(沈器遠), 김자점(金自點)의 오국불충(誤國不忠)의 죄를 논하기도 하였다. 사간을 역임하는 동안 직언으로 일관하여 주위의 시기를 받아 승진이 순조롭지 못하기도 하였다. 외직으로는 진주, 강계, 창원 등의 고을을 다스렸는데, 진주 부임시에는 경상어사 민정중(閔鼎重)의 선치(善治) 보고로 표리(表裏: 옷의 겉감과 안감)를 받았다. 강계 재임시에는 삼세(蔘稅)를 모두 면제해 주어 백성들이 ‘관서활불(關西活佛)’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계서일고(溪西逸稿)』 2권 1책이 전한다. 문집 속에는 지제교(知製敎)로 임금을 대신하여 지은 교서(敎書), 사제문(賜祭文), 소(疏), 계사(啓辭) 등의 문장, 연행 중의 기록인 「연행일기(燕行日記)」, 암행어사 재임 중의 기록인 「호남암행록(湖南暗行錄)」 등이 수록되어 전한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영주시 동쪽 손향(巽向) 언덕에 있다.
[상훈과 추모]
홍문관부제학에 추증되었으며 청백리(淸白吏)로 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