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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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安義 |
영어음역 | Seong Anui |
이칭/별칭 | 정보(精甫),부용당(芙蓉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명수 |
[정의]
조선 중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의병장.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정보(精甫), 호는 부용당(芙蓉堂). 증조부는 성익동(成翼仝), 할아버지는 성윤(成胤),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성적(成績), 어머니는 장연노씨(長淵盧氏)로 노사영(盧士英)의 딸이다.
[활동사항]
성안의는 창녕의 성산리(현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태어났다. 영주의 이산 신암리로 옮겨 살다가 만년에 봉화 물야의 가평리로 옮겼다. 8세 때 한강(寒岡) 정구(鄭逑)를 처음 만났고 15세에 문하에 들어 본격적으로 수학하였다. 훗날 정구가 창녕으로 부임하여 부용서재(芙蓉書齋)를 창건하여 성안의에게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위임하였다.
1591년(선조 24)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에 권지교서부정자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으며, 의병장 곽재우(郭再祐) 진영에 들어가 의병군무에 협력하였다. 또한 관찰사 김륵(金玏)을 찾아가 시세를 논하고 대책을 강구하였다. 1598년에는 성균관사예를 임명받았고, 영남조도사(嶺南調度使)로 안동 등지를 내왕하며 군량미를 확보하는 한편 난중에 허덕이는 백성들의 구제에 힘썼다. 이후 형조좌랑, 예조좌랑, 평안도사, 병조좌랑, 성균관사성, 남원부사, 광주목사, 성균관사예, 제주목사 등을 지냈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4권 2책의 『부용당일고(芙蓉堂逸稿)』가 있다.
[상훈과 추모]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1695년(숙종 21) 창녕 사림들에 의해 이장곤(李長坤)과 함께 연암서원(燕巖書院)에 배향되었다. 이후 물계서원(勿溪書院)에도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