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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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裵幼章 |
영어음역 | Bae Yujang |
이칭/별칭 | 장은(章隱),유암(楡巖),서호자(西湖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배종석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가계]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장은(章隱), 호는 유암(楡巖)·서호자(西湖子). 할아버지는 배응경(裵應褧), 아버지는 전라도도사 배상익(裵尙益),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김용(金涌)의 딸이다. 양부는 감찰공(監察公) 배인지(裵紉芷), 양모는 의성김씨(義城金氏)이며 배인지에게 입양되었다. 집안은 충의(忠義)로서 명성이 있었는데, 할아버지 배응경은 군수(郡守)로서 임진왜란 때 성을 지켜 난을 막았고, 아버지는 광해군 때에 의를 주장하다가 벼슬을 박탈당했다.
[활동사항]
배유장은 현재의 경상북도 영주시 상망동(또는 하망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영민하고 남다른 자질을 가지고 있어서, 아버지 배상익이 일찍이 “우리 집안을 크게 일으키는 자는 바로 이 아이다.”라고 하였다. 9세에 비로소 학문에 들어섰는데, 힘들이지 않고도 기예가 완성되었다. 1636년(인조 14)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남한산성의 기별을 듣고는 산에 올라가 통곡하였다.
이후 효우(孝友)로써 자신을 다스리면서 주경야독을 일삼았고 더 이상 벼슬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이때부터 『주자대전(朱子大全)』,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 등의 책에 잠심하고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만년에 명성이 높아져 천거로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서 여생을 마쳤다. 배유장은 평생 존주의리(尊周義理)를 투철히 실천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유암집(楡巖集)』 2권이 있다. 문집 중 잡저 「청량산유록(淸凉山遊錄)」은 배유장이 나이 30세인 1647년 9월 14일부터 9월 21일까지 청량산 일대를 유람하고 남긴 기행문이다. 여행 경로는 한계정사(寒溪精舍)과 도산서원 전교당(陶山書院典敎堂)을 들렀고, 청량산에서는 금탑봉(金塔峰)-어풍대(御風臺)-치원암(致遠庵)-안중암(安中庵)-청량사(淸凉寺)-경일암(擎日庵)-김생굴(金生窟)-환선대(喚仙臺)-문수암(文殊庵)-연적봉(硯滴峰) 순으로 여행하였다.
청량산에서 나와서는 역동서원(易東書院)과 월천서당(月川書堂)을 들렸다. 도산서원에서는 퇴계 이황을 추모하는 내용이 있고, 전체적인 청량산 감상을 말미에 붙여 놓았는데 처한 곳이 높을수록 보는 것이 점차 원대해진다는 깨달음을 적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