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4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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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致皜 |
영어음역 | Ryu Chiho |
이칭/별칭 | 탁수(濯叟),동림(東林),유치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주부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탁수(濯叟), 호는 동림(東林). 고조부는 류태제(柳台齊), 증조부는 류호원(柳浩源), 할아버지는 류정휴(柳鼎休)이며, 아버지는 류후문(柳後文),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김현운(金顯運)의 딸이다.
[활동사항]
류치호는 안동부(安東府)에서 살았으며 8세에 「연적(硯滴)」을 읊어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일찍이 천문(天文), 지리(地理), 율력(律曆), 산수(算數), 노장(老莊)에 이르기까지 두루 통달했으나 그런 글들이 실학(實學)에는 보탬이 없다하여 송학(宋學)과 퇴계학(退溪學) 등에 전심하였다.
1845년(헌종 11)에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태릉참봉(泰陵參奉)이 제수되었으나 곧 사직하였다. 1856년(철종 7)에 순상(巡相)인 신석우(申錫愚)가 도내(道內)에서 선비를 모아 여강서원(廬江書院)에서 강회(講會)를 할 때에 류치명이 좌수(座首)가 되고 류치호와 김대진(金垈鎭)이 빈주(賓主)가 되어 향음례(鄕飮禮)를 행하였다. 류치호는 양학(洋學)이 점점 성해지자 양학의 폐단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이 류치호의 묘갈명을 지었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동림집(東林集)』이 전한다.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이해하기 쉽도록 풀이한 『태극혹문(太極或問)』과 주희(朱熹)의 「경재잠(敬齋箴)」에 대한 여러 유학자들의 학설을 채집(採輯)하여 편집한 『경재잠집해(敬齋箴集解)』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