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3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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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碝 |
영어음역 | Nam Yeon |
이칭/별칭 | 연부(鍊夫),무망재(无妄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명수 |
[정의]
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연부(鍊夫), 호는 무망재(无妄齋). 할아버지는 효자로 이름난 남응원(南應元)이고, 아버지는 안동 풍산으로 세거지를 옮겨 신안의 시조가 된 남융달(南隆達)이다. 형이 남급(南礏)이다.
[활동사항]
남연(南碝, 1598~1664)은 1624년(인조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공조정랑, 성균관직강, 호조좌랑, 형조정랑, 봉상시첨정 등을 지냈다. 예안현감으로 있으면서 양전을 새로 작성하고 정사를 조리에 맞게 처리하였으며 사사로운 청탁도 용납하지 않았다.
잠시 벼슬에서 물러나 있을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길이 막혀 임금을 호종하지는 못하고 경상감영에서 종군하였다. 이때 사천의 가수령(假守令)이 되어 민심을 수습하는 데 노력하였다. 이듬해 공조정랑과 성균관직강을 거쳐 김세렴 막하의 보조관이 되었으며, 독운사 홍무적(洪茂績) 막하의 참모가 되었다. 1644년(인조 22) 평안도사가 되었는데, 병이 깊어 관찰사가 그의 일을 맡아 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사천일록(泗川日錄)』과 『책문기사(柵門記事)』, 『신안세고(新安世稿)』가 있다. 『사천일록』은 병자호란 때 사천의 가수령이 되어 겪었던 일들을 기록한 글이고, 『책문기사』는 1645년(인조 23) 심양에서 귀국하는 왕세자 일행을 의주에서 맞이하여 돌아오면서 겪은 일을 기록한 글이다. 『신안세고』는 남융달, 남급, 남천한(南天漢)의 문집을 한데 묶어 간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