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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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虎運 |
영어음역 | Gim Houn |
이칭/별칭 | 적운(迪運),치길(穉吉),우간(雨澗)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만기 |
성격 | 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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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
성별 | 남 |
생년 | 1768년 |
몰년 | 1811년 |
본관 | 의성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의성. 초명은 적운(迪運), 자는 치길(穉吉), 호는 우간(雨澗). 아버지는 김시홍(金始弘)이고, 어머니는 고령신씨(高靈申氏)로 통덕랑 신사주(申思柱)의 딸이다. 안동에 세거해 온 김호운의 집안은 문학행의(文學行懿)로 명성이 자자하였다.
[활동사항]
김호운(金虎運, 1768~1811)은 예안 분포리에서 태어났으며, 삼산재 류장원(柳長源)과 우고(雨臯) 김도행(金道行) 등에게 학문을 배웠다. 타고난 자질이 영특하여 7~8세 때부터 시구를 엮어 어른들을 놀라게 하였다. 한번은 10세 때 할아버지가 이웃 마을에서 남명(南茗) 씨앗을 가지고 와서 시를 지으라고 명하였다.
이에 김호운은 곧바로 ‘산가에 가랑비 내리니/ 남명씨 좀 빌려 주소/ 다른 잎들이 자라나기를 기다려/ 그대와 더불어 맛과 향을 나누리라(山家得小雨 願借南茗種 待他葉長時 與君分味香)’라는 시를 지었다 한다. 1804년(순조 4)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809년(순조 9)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보임되었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대신 경학(經學)에 힘써 조예가 깊었으며, 예설(禮說)에도 정통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우간집(雨澗集)』 5권 3책이 있다. 이 가운데 편지글에는 스승인 류장원과 상례(喪禮)에 대하여 문답한 글 및 김도행과 『심경(心經)』의 내용에 대하여 문답한 글이 포함되어 있다. 이 글들에는 송나라 주희를 비롯하여 이황(李滉), 김장생(金長生), 정구(鄭逑) 등 여러 학자의 학설이 인용되어 있다. 변(辨)에는 조선 초기 문신인 권근(權近)의 예설에 대하여 논평한 글과 주희의 감흥시(感興詩)에 대하여 평한 글, 『서경(書經)』 주서편(周書篇)에 나오는 연대와 사실 따위를 고증한 글 등이 있다.
『우간집』의 중심을 이루는 잡저에는 『대학(大學)』·『중용(中庸)』·『심경』 등 경전의 내용에 대한 강록(講錄), 차의(箚疑) 등이 있다. 또한 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 심통성정설(心統性情說) 등 성리학의 주요 논쟁에 대하여 자신의 학설을 밝힌 글과 대구의 부인동(夫仁洞)에서 동약(洞約)을 둘러싸고 갈등이 생기자 대책 마련을 위하여 여러 서원에 보낸 통문 등이 있다.
[묘소]
처음에는 예안 분포리에 묘를 썼다가, 18년 뒤 선조(先兆) 옆 반시(盤市)로 이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