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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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琴愷 |
영어음역 | Geum Gae |
이칭/별칭 | 언강(彦康),망월헌(望月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황만기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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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
성별 | 남 |
생년 | 1562년(명종 17) |
몰년 | 1629년(인조 7) |
본관 | 봉화 |
대표관직 | 여주목사 |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언강(彦康), 호는 망월헌(望月軒). 아버지는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어머니는 횡성조씨(橫城趙氏)로 조대춘(趙大春)의 딸이다. 부인은 두 명으로, 몽재(蒙齋) 이안도(李安道)의 딸과 혼인하여 2녀를 낳았으며 이후 태촌(泰村) 고상안(高尙顔)의 딸과 혼인하여 2남 3녀를 낳았다. 형은 월담(月潭) 금경(琴憬), 만수재(晩修齋) 금업(琴𢢜)이다.
[활동사항]
금개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서 태어났으며 월천(月川) 조목(趙穆)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1년(선조 24)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01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608년 성균관전적을 시작으로 사헌부감찰, 예조정랑을 역임하였다. 1611년에는 금산군수로 나갔으며, 1614년에는 다시 성균관전적이 되었다가 봉사직장, 군기시첨정, 사헌부장령, 사간원헌납, 사헌부지제교 등을 두루 지냈고, 외직으로 여주목사를 역임하였다. 이후 광해군 정권의 혼탁함을 보고는 벼슬을 버리고 안동 예안의 향리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
일찍이 택당(澤堂) 이식(李植)이 당대의 인물을 논하면서 “여주목사로 있을 때 북어 꼬리를 제수물로 사용하면서 ‘가법(家法)이기 때문이다’라고 한 일화를 통해 볼 때 청검(淸儉)한 덕을 지녔다”라고 평하고 있다. 또 당시 풍기군수로 있던 태촌(泰村) 고상안은 금개의 청검한 덕을 높이 사 『논어(論語)』에서 공자(孔子)가 공야장(公冶長)의 덕을 높이 기려 자신의 딸을 아내 삼게 한 것처럼 직접 자신의 딸을 시집보낼 정도였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 백운지마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