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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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秉燮 |
영어음역 | Gwon Byeongseop |
이칭/별칭 | 국형(國衡),석오(石塢)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
집필자 | 김주부 |
성격 | 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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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
성별 | 남 |
생년 | 1854년(철종 5) |
몰년 | 1939년 |
본관 | 안동 |
[정의]
조선 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국형(國衡), 호는 석오(石塢). 아버지는 권교영(權敎永), 양부는 권조영(權祚永)이다.
[활동사항]
권병섭은 1854년(철종 5) 안동부 임하리(현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서 태어났다. 7세에 길헌(吉軒) 김진명(金鎭明)의 문하에 들어갔으며, 그 후 외삼촌 김양진(金養鎭)의 문하와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92년에 모친상을 당하고 1895년에는 부친상을 당하였다. 거상(居喪) 이후 시사(時事)가 날로 그릇됨에 벼슬길에 나설 수 없다 하여 위기(爲己)의 공부에 열중하였다. 말년에는 의리(義理)와 금석문(金石文)에 관한 저술에 힘썼다. 1939년 2월 1일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사상]
권병섭은 평소 배운 것을 실천에 옮겨 봉선(奉先), 거가(居家), 돈륜(敦倫), 목족(睦族) 등에 최선을 다했다. 집안이 빈한하였으나 인품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많아 빈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부지런하여 게으르고 나태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비속한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으며 희로애락의 표정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다고 한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석오집(石塢集)』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