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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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必孝 |
영어음역 | Gang Pilhyo |
이칭/별칭 | 강세환(姜世煥),중순(仲順),해은(海隱),법은(法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만기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초명은 강세환(姜世煥), 자는 중순(仲順), 호는 해은(海隱)·법은(法隱). 아버지는 강식(姜植),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 이중연(李重延)의 딸이다.
[활동사항]
강필효는 경상도 안동부(安東府)에서 태어났다. 윤증(尹拯)의 제자인 강찬(姜酇)과 윤광소(尹光紹)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00년(정조 24) 집 동쪽에 창주(滄洲) 경의재(敬義齋)를 모방하여 서실을 짓고 주자의 「백록동규(白鹿洞規)」와 성혼의 「우계서실의(牛溪書室儀)」를 써서 걸고 윤증의 「획일도(畫一圖)」를 준칙으로 삼아 운영하였는데, 사방에서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1803년(순조 3)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순릉참봉(順陵參奉)에, 1814년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1842년(헌종 8) 조지서별제(造紙署別提)에 임명되었다가 곧 충청도도사로 옮겼으며 이듬해 돈령부도정에 이르렀다.
[학문과 사상]
강필효는 사서(四書), 육경(六經), 여러 성리서(性理書)를 깊이 연구한 끝에 천명(天命)은 이(理)로 말하는 경우도 있고, 기(氣)로 말하는 경우도 있으며 또 이기선후설(理氣先後說)에 있어서도 이선기후(理先氣後)와 기선이후(氣先理後)가 모두 가능하며 이기는 서로 체용(體用)이 된다는 이기론(理氣論)을 전개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술로는 『고성현고경록(古聖賢考經錄)』, 『조사속록(造思續錄)』, 『소계회화록(素溪會話錄)』, 『석척록(夕惕錄)』, 『사유록(四遊錄)』, 『경서고이(經書考異)』 등이 있으며 문집으로 『해은유고(海隱遺稿)』 22권 12책이 있다. 또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과 「청량산가(淸凉山歌)」를 한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