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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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再恒 |
영어음역 | Gang Jaehang |
이칭/별칭 | 구지(久之),입재(立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만기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구지(久之), 호는 입재(立齋). 아버지는 강우(姜鄅),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 이세준(李世俊)의 딸이다.
[활동사항]
강재항은 안동부(安東府) 춘양현(春陽縣) 법전리(法田里: 현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법전리)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십구사략(十九史略)』을 배우는데, 10여 장만을 보고도 그 뜻을 알았다 한다. 처음에는 큰아버지 성건재(省愆齋) 강찬(姜酇)의 밑에서 배웠고 다음에는 윤증(尹拯)의 문인이 되었으며, 윤동원(尹東源), 권구(權絿), 신익황(申益愰) 등과 교유하면서 학문을 닦았다.
1735년(영조 11)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장작감감역(將作監監役)에 임명되었고, 이어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 경조부주부(京兆府主簿), 회인현감(懷仁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회인현감으로 있을 때 청(淸)·신(愼)·근(勤) 세 글자를 지침으로 삼고 선정을 베풀었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 윤증의 「획일도(畫一圖)」와 이이(李珥)의 「위학지방도(爲學之方圖)」를 강론하면서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경전, 제자백가, 천문, 지리, 술수 등에 모두 통하였으며, 이기(理氣), 성명(性命), 음양, 사생, 합산(合散), 치란(治亂) 등에 관하여 많은 잡저를 남겼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입재유고(立齋遺稿)』 20권이 있다. 문집 중 「산거부(山居賦)」는 산에 거처하는 즐거움을 노래한 시로서 청량산(淸凉山) 일대의 산세를 찬탄하면서 선비가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러한 산에 거처하여 살아가야 한다고 노래하였다. 「산거부」를 새긴 서판도 현존한다. 「장작감변통사의(將作監變通事宜)」는 1737년(영조 13) 장작감감역으로 있으면서 현지의 네 가지 폐단을 논한 글이다. 「회인현보민청간상절목(懷仁縣補民廳看詳節目)」은 회인현감으로 재직하면서 보민청의 운영, 관리 절목을 여덟 가지로 정한 것이다. 「동사평증(東史評証)」은 1748년 우리나라 역사에 관해 숙신(肅愼)으로부터 고려까지 선유들의 논을 평한 것이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법전리 성잠(星岑) 강재항이 살던 집 뒤 한천(寒泉)의 언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