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0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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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栗谷李氏論四端七情書辨 |
영어음역 | Yulgogissinonsadanchiljeongseobyeon |
영어의미역 | A Book to object to Theory of the Four Beginnings and the Seven Emotions And Theory of the Release of Gi and the Ride of I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안병걸 |
성격 | 유학이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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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이황|이이 |
저자 | 이현일(李玄逸, 1627~1704) |
저술연도/일시 | 1688년 |
간행연도/일시 | 1909년 |
사용활자 | 목판본 |
소장처 | 안동대학교도서관 |
소장처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388[경동로 1375] |
[정의]
1909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안동 출신 유학자 이현일의 저서.
[개설]
『율곡이씨논사단칠정서변(栗谷李氏論四端七情書辨)』은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이 이황(李滉, 1501~1570)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비판한 이이(李珥, 1536~1584)의 「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과 「기발리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19조목에 걸쳐 비판한 저작이다. 17세기 후반 당시의 학계와 정계를 아울러 주도하던 기호학파에 대하여 영남 퇴계학파의 입장에서 기호학파의 종장인 이이의 학설을 본격적으로 비판한 최초의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편찬/발간경위]
16세기 후반 이황의 「이기호발설」에 대하여 이이는 「기발리승일도설」을 주장하면서 이황의 이론을 비판하였다. 이후 17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김장생(金長生), 송시열(宋時烈) 등 이이를 계승한 기호학파 학자들은 퇴계학설에 대하여 줄기차게 비판적이었다. 반면 퇴계의 학문을 계승한 영남학파 학인들은 기호학파의 비판에 대한 대응이 거의 없었다.
17세기 후반 영남학파를 주도한 유학자 이현일은, 이이가 성혼과의 왕복 논변서에서 퇴계학설에 대하여 비판적인 부분들을 찾아내어 19개의 길고 짧은 변파문을 지었다. 완성된 시기는 1688년이다. 이로부터 기호의 율곡학파에 맞서는 영남 퇴계학파의 학설이 확고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현일의 『율곡이씨논사단칠정서변』은 기호학파의 퇴계설 비판에 대한 영남학파 학자의 최초의 반론으로서, 이현일의 생전에 경향의 학자들 사이에 널리 전사되면서 많이 읽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율곡이씨논사단칠정서변』은 이현일의 문집인 『갈암집(葛庵集)』이 공간된 1909년에 겨우 간행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현일이 1694년 갑술환국(甲戌換局) 이후 관작이 삭탈된 채 북관과 남변에서 7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다 1700년에 겨우 풀려났으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신원되지 못했고, 사후에도 신원과 추탈(追奪)이 거듭되다 1909년에야 최종적으로 신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서지적 상황]
본서의 저본은 안동대학교도서관 소장본이다. 목판본으로 『갈암집』40권 중 제18권 첫머리에 수록되어 있다.
[구성/내용]
본문은 모두 19개의 길고 짧은 논설문이다. 권두에 「율곡이씨논사단칠정변」이라는 제목이 있고, 이어서 이 글의 저작 취지를 밝힌 저자의 짧은 글이 있다. 이어서 “이씨왈(李氏曰)~” 시작되는 율곡설(栗谷說)을 기록한 뒤에, 한 글자를 내려 “우위(愚謂)~”로 시작되는 자신의 주장을 기록하였다. 모두 19개조의 변설이 『갈암집』 권18의 1판에서 20판에 걸쳐 실려 있다. 이 저작의 말미에 저자는 후지(後識)를 두어, 19개 조목에 걸친 자신의 변론은 율곡의 허물을 대략 지적했다고 자평한 뒤에 ‘인심도심’에 대한 율곡의 주장에 남은 문제가 적지 않지만 다 분별할 겨를이 없다고 적고 있다.
[의의와 평가]
16세기 후반 이이의 퇴계설 비판에 대한 영남학파 학자의 본격적인 반론으로, 이를 통해 퇴계 고봉의 사단칠정 논변은 더욱 정치한 이론으로 발전하였다.